매일신문

[야고부] 치매

로널드 레이건 영화배우 출신의 첫 미국 대통령이자 알츠하이머병의 무서움을 그 자신의 투병을 통해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1994년 11월 5일, 그가 미국민에게 보낸 마지막 자필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치매에 걸렸음을 고백한 그 편지는 '이제 저는 인생의 황혼을 향한 여행을 시작해야겠지만~'이라는 글로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고맙습니다. 친구들이여'로 끝을 맺었다. 자신이 한때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만큼 철저히 기억을 잃어버렸던 그는 10년 후인 2004년 6월 5일 93세로 타계했다.

20일은 '세계 치매의 날'.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이날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치매 환자 증가율 때문이다. 20일 보건복지부는 2000년 28만 2천여 명이던 국내 치매 노인이 올해 39만 9천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480만 명 노인 대비 8.3%의 유병률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욱이 국내 치매 발생률은 2010년 46만 1천 명(8.6%), 2020년 69만 3천 명(9.0%) 등으로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요즘은 20, 30대 젊은 층에서도 조기 치매환자가 나타나 '치매=노인'의 공식도 깨뜨리고 있다.

치매는 대뇌 신경세포 손상에 따라 인지 기능 및 기억 기능 등이 지속적으로 상실돼 정상적인 정신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크게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와 중풍 등 혈관성 치매로 나누어진다. 고도의 의학수준을 자랑하는 21세기임에도 효과적인 치매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치매는 환자는 물론 그 가족마저도 황폐하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이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치매는 '老妄(노망)'으로만 치부됐다. 이 때문에 흔히 가족 간에 심각한 오해와 갈등이 있어왔다. 치매가 질병으로 인식되면서 환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이 병이 가정의 평화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내년도 나라살림에 쓰일 257조 3천억 원의 예산 중 복지 분야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자에 대해 국가의 책임보호가 강화될 전망이다. '영혼을 갉아먹는 병 '치매,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할 과제가 됐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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