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머니 '白壽' 기념 미술관 개관 조각가 이갑열

지리산 자락에서 100세 노모를 모시고 작업하는 조각가 이갑열(59'경상대 미술교육과) 교수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 미술관을 열었다. '산청 이갑열 현대 미술관'. 10여년 지리산에서 작업 끝에 올해 8월 18일 어머니의 백수(白壽)를 기념해 개관한 것이다. 미술관은 인근에 들어설 대형 '조각공원'의 일부로 이갑열 교수는 근처 2만 여평 군유지 야산에 야외조각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그가 대규모 야외 조각공원을 생각한 것은 1990년 노르웨이 오슬로의 '구스타브 비겔란 조각공원'을 다녀온 이후다.

이 교수가 미술관을 착공한 것은 2004년 말. 진주의 아파트와 작품 일부를 팔아 5억 원으로 시작했다. 야산 터를 깎고 직접 설계했다. 아내와 둘이서 미술관을 지었다. 삽질하고, 구루마 끌고, 페인트칠했다. 힘이 많이 드는 부분은 인부를 고용했다.

공사비를 아끼려고 분양을 끝낸 아파트 모델 하우스 4채를 뜯어와 건축자재로 썼다. 뜯어온 자재에 맞춰 설계하고, 창틀 크기에 맞게 문을 냈다. 부엌과 화장실 역시 뜯어온 싱크대와 욕조와 변기에 맞게 만들었다.

집에 맞게 자재를 쓰는 게 아니라, 자재에 맞게 집을 만들려니 인부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대충 잘랐다가 안 맞으면 낭패였고 꼼꼼하게 작업하느라 그네들도 힘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자니 힘에 부친 작업자들이 떠나버리기도 했다. 인부들이 떠나고 나면 부부 두 사람이 남아 일했다.

"일 하다가 힘들면 쉬었어요. 다른 중요한 일이 생기면 또 그 일부터 처리했고요. 일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또 쉬었어요. 그리고 돈이 생기면 일을 시작하고…."

이 교수는 미술관 짓는 작업이 즐거웠다고 했다. 빨리 지으려고 조바심 내지 않았고, 노역이다 싶을 만큼 일하지 않았다. 그렇게 쉬엄쉬엄 만드느라 착공에서 완공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미술관을 완성하고 사람들이 '큰 고생했다.'고 했지만 이 교수 부부는 '즐거웠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일대 2만여평 땅에 만들 '조각공원' 역시 되어지는 대로, 그러나 끝까지 만들 것이라고 했다. 완공까지 염두에 둔 시간이 있지만 꼭 그 시간에 맞출 생각은 없다고 했다. 시간에 맞추느라 예술을 작업수준으로, 창작의 재미를 노동으로 격하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말이었다.

◇ 뒤상의 목을 자른 이갑열

20세기 초 미술에 형식론적 변혁을 몰고 온 작가가 마르셀 뒤상(1887-1968)이다.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하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했다. 공장 기성품을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흔히 무엇을 작품이라고 할 때는 예술가의 손을 거쳐서 완성된 유일무이한 무엇일 때를 지칭한다. 그런데 뒤상의 「샘」은 유일무이한 무엇이 아니었다. 이 변기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똑같은 변기를 수 백개 만들었을 것이고, 뒤샹은 그 중 하나를 구입해서 사인하고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뒤상의 키워드는 레디메이드(ready made)라고 일컬어진다. 일견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이 발상은 당시까지의 '미술적 관념'을 깨트렸다.

작가 이갑열은 자신을 모델로 한 조각상 (제목 '하늘의 뜻으로' 1995년작)에서 뒤상의 목을 잘랐다. 미술사에 변혁을 가져온 인물을 목 자름으로써 '뒤상의 창조'를 사전 속의 '기존 관념'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이는 뒤상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뒤상이 지금까지의 관념을 무너뜨렸듯 이갑열 자신도 관념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갑열은 많은 미술작가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이갑열'이 됐다. 지금까지의 서구적 미술에서 벗어나 '이갑열의 미술'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뒤상의 목을 든 '작가 이갑열 상'의 브로슈어 사진은 아쉽다. 혹시 '산청 이갑열 현대 미술관'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래서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면 브로슈어 사진을 찍은 위치가 아니라 훨씬 더 왼쪽에 자리잡고 감상해보실 것을 권한다. 뒤상의 얼굴이 아니라 칼을 든 오른 손, 바로 작가 이갑열의 손에 주목해보시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방금 베어버린 손, 핏줄이 도드라지고 근육의 역동이 느껴지는 사람의 팔, 이갑열의 팔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뒤상의 목을 베어버린'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갑열은 언제나 변화를 꿈꾼다. 매 전시회마다 주제가 다른 점은 이갑열 조각의 '고집스러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 인간존재의 근원에 관해 묻는다

'산청 이갑열 현대 미술관' 안과 밖에 전시된 작품들은 다양했다. 눈, 코, 입, 귀가 멀쩡한 얼굴을 거꾸로 세워놓은 작품, 여자의 성기를 중심으로 하복부를 조각하고 거꾸로 뒤집어 놓은 작품, 여성의 음부를 노골적으로 조각한 작품, 여자의 배꼽 옆에 남자 성기를 넣은 작품, 유방 한쪽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웅크린 태아를 넣은 작품…. 이들 작품은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가 그대로 드러나지만 성적 대상은 아니다. 여성 성기 옆의 남성 성기는 발기하지 않았고, 여성의 유두는 성적 흥분처럼 도드라져 있지만 그 옆에는 태아가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에로스'가 아니라 '생명의 잉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 역시 에로스와는 거리가 있다. '인간의 문'이라는 대제 아래 '탄생의 문' '생명의 문' '사랑의 문' '잉태의 문'이라고 붙임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한다.

삶과 죽음의 메타포를 표현한 '촛불 설치전(2003년 11월)'은 석고와 실리콘으로 작가 자신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 파라핀을 녹여 벌거벗은 몸을 만들었다. 나신 주위에 전시한 200여개의 얼굴도 파라핀으로 만들고 초를 달았다. 전시 내내 초가 타들어 갔고 얼굴은 점차 해골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이 삶의 일부이고, 삶이 죽음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철학적이네요.'

미술관을 둘러보며 기자가 말했다.

"철학적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군요."

작가는 '철학'이 아니라 '생각하는 재미'라고 했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고 했다. 미적 아름다움의 추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갑열의 작품은 정과 망치로 쪼아낸 '곡선'이 아니라, 사유로 쪼아낸 작가 내면의 '사랑'처럼 보인다. 흔히 예술가의 작품은 '상처의 정수'라고 하지만 이갑열의 작품은 '사랑의 정수'처럼 보인다.

◇ 어머니, 아내 그리고 자식들

인터뷰 중에 미국에서 공부하는 장남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 우리 아들! 잘 있지? 오늘 여기는 공휴일(개천절)이라 관람객이 많네…."

대충 짧은 수다가 끝나자 휴대폰을 아내에게 넘긴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아내 안선옥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예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전화기 너머의 아들에게 '어! 우리 아들!' 이라니? 대체 아들이 몇 살인가? 27세라고 했다. 예순을 눈앞에 둔 아버지가 서른을 눈앞에 둔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어이! 우리 아들!' 이라고 했다. 행복해 보였고 그대로 흉내내고 싶었다.

아들과 딸은 하루에 한번씩 꼭 전화를 낸다. 이갑열 교수 집을 떠나면 하루에 한번 이상 꼭 전화를 낸다고 했다. 가족이 전화를 내는데는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 전화를 해도 한 달에 5,6만원이면 충분하다며, 5,6만원 투자해서 몇 백 배의 행복을 누린다고 했다.

이갑열 교수가 조금 이르다 싶은 마음에도 서둘러 미술관을 개관한 것은 어머니의 백수를 축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관 초입에는 '8월 18일 조원수 역사 백수 기념잔치'라는 현수막이 아직 붙어 있었다.

올해 이 교수는 문신 미술상을 받았고, 아이들은 각자 자기 영역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이 교수는 시상식이 있던 날 아들'딸과 함께 아내에게 줄 '종합대상' 상장을 만들었다. 남편과 아들'딸이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내 안선옥씨 덕분임을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기쁜 내색을 않던 노모도 이날은 크게 기뻐하셨다고 한다. 아들과 손자 손녀, 며느리가 상을 받았으니 그보다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돈 있으면 이웃돕기에나 써라.' 며 육순 잔치도, 칠순, 팔순, 구순잔치도 거부했던 어머니는 흔쾌히 백수잔치를 허락하셨다. '산청 이갑열 현대 미술관'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 조각가 이갑열=홍익대 조소과 졸업. 경상대 미술교육과 교수.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아카데미와 미국 피츠버그 주립대 초빙교수. 12차례 개인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제 6회 문신미술상 수상.

△ 비겔란 조각공원= 30만평 대지에 비겔란이 40년에 걸쳐 '인생순환'을 주제로 600여 점의 나체 조각상을 만든 시민공원이다. 비겔란 조각공원에 가면 출생과 성장, 사망에 이르는 '인생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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