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죽음 앞에서도 웃는 '엄마의 사랑'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유방암 투병 안옥분씨

▲ 유방암을 앓고 있는 안옥분(46) 씨가 늦둥이 딸 유림(9)이와 함께 병실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으로 작은 단칸방을 얻었지만 모녀는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 유방암을 앓고 있는 안옥분(46) 씨가 늦둥이 딸 유림(9)이와 함께 병실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으로 작은 단칸방을 얻었지만 모녀는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에게 유난히 웃음 많았던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녀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박노익기자

유방암이 척추와 간, 오른쪽 뇌까지 전이된 두 아이의 엄마를 만났다. 절망의 늪에서,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힘겨워했던 이들을 여러 번 마주했던 '이웃사랑' 취재진에게 그녀는 너무나 의외였다. 그녀는 생기가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험난한 지난 삶을 풀어내는 얘기도 거침이 없었다. 제비뽑기를 하자며 졸라대던 그녀의 딸 유림(9)이 덕분에 대화 중간에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 물어야 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고 취재가 끝났다. 밝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어이없이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웃음 뒤에 숨겨진 절망이 갑작스레 다가와 숨이 막혀왔다. "죽음이요? 글쎄요.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밝게 살면 하루 정도 늦춰지지 않겠어요." 아홉살 난 딸아이와 장애를 가진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는 그녀에게 '웃음'은 남겨질 가족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이었다. 선물 보따리를 한아름 받았는데도 이상하게도 눈물은 한동안 쉼없이 흘러내렸다.

"유림이는 서른 여덟에 어렵게 나은 늦둥이 딸입니다. 노래도 곧잘 따라하고 춤도 잘 추던 재간둥이지요. 네살 땐 엄마 아프다고 병원에 와서 종일 재롱을 피우는데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어요. 근데 그땐 몰랐지요.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남편(53)이 사고로 허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 것이 제 탓만 같았거든요. 암에는 식이요법이 좋다며 종일 먹거리에 신경쓰며 짬짬이 공사장 막일을 나가는 남편에게 어쩜 사고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니까요. 남편은 그렇게 척추에 철심 6개를 박고 곱사등이 됐고, 전 한쪽 가슴을 도려내고 삶을 되찾았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남편의 건강과 맞바꾼 고약한 시간이라며 떠올리는 것조차 싫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 남편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요. 남편 수술비 1천 300만 원이 뭐라고 그렇게 아등바등 굴었는지···. 유림이에게도 너무나 미안해요. 그래서 병원도 옮겼어요. 대학 병원에선 면회가 제한돼 함께 있지 못했거든요. 숨이 멎을 것 같은 통증을 이겨낸 뒤 유림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지 이제서야 깨닫네요"

8인 병실 한켠에 살림 살이를 가져다 놓은 채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대화 도중 유림이 숙제를 거들어 주었다. 지난해 6월 암이 재발한 뒤 그녀는 받아쓰기며 만들기 숙제며 뭐든 유림이와 함께 했다. 유림이의 웃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고 그녀 역시 유림이의 기억에 '웃는 엄마'로 남길 원했다. "제비뽑기 하자." 유림이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종이에 '메롱', '꽝', '강아지 흉내' 이렇게 글자를 써서 뽑은 사람이 그 지시를 따라하는 거야." 사교성이 좋은 유림이는 처음 본 기자에게까지 게임을 제안했다. '강아지 흉내'를 뽑아든 유림이는 병실 곳곳을 다니며 멍멍 소리를 내며 깔깔거렸다. 다른 환자들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 사이 그녀가 좀전과 달리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생에 대해 욕심을 부리면 안되겠죠? 한없이 미안한데···. 저 어린 것이 기억에서만 엄마를 찾을 수 있는 현실이 답답하네요. 병원비로 진 빚 2천만 원도 유림이의 발목을 잡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한숨대신 그녀는 병실을 한바퀴 돌고 돌아온 유림이를 환하게 웃으며 껴안아주었다. 그녀의 웃음 진 눈가에 잠시 눈물이 맺혔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서부전선 DMZ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와 관련하여 군 당국이 유엔군사령부의 신속한 현장조사 요청을 거절했다고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2026에서는 (주)덕산제이엠로보틱스의 최첨단 로봇들이 탈과 한복을 착용하고 공연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추석 연휴인 26일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기관차 바퀴가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승객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한국철도공사는 사...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이송 사실을 공개하며 한국 정부와 외교적 갈등이 불거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공식 합..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