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다치(日立)에서 살고 있는 지인은 가끔 열도의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의 한 70대 할머니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지인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웃의 이모란다. 할머니는 한국 영화 배우 이병헌의 팬이다. 일본 내 많은 '욘사마(배용준)' 팬들이 그러하듯 할머니도 자신의 로망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맞춤법이 엉망일까봐 걱정이 된 나머지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 수정을 부탁한다. 편지를 손질해 홋카이도로 되돌려 보내면 그제야 한국으로 편지를 부친다.
지인이 살짝 들려준 편지의 내용은 10대 소녀처럼 순수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덕분에 새로운 것(한국어 공부)에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그런 마음을 갖게 해줘서 고맙습니다~.'할머니는 도자기 만드는 곳에 가서 글을 새겨넣어 구운 뒤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슴 떨리는 걸 해볼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우리네 한국인으로서는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젊은 외국 배우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편지를 쓰기 위해 힘들게 외국어까지 배우고 글 수정 받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다니…. 우리 같으면 십중팔구 '그 나이에 무슨…' 이라거나 '주책바가지' 라며 흉보기에 바쁘지 않으려나.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예전의 자신과 한참 달라진 자신에게 놀랄 때가 있다. 속상하고, 부끄럽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거울에 비친 모습이 보기 싫어질 때쯤이면 TV 속 도무지 늙지 않는 연예인들에게 부러움에 찬 시선을 보내게 된다. 더 이상 가슴 설렐 일도, 가슴 떨릴 일도 없는 나른한 일상은 더욱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젊음'이 인생의 절대 목표인 양 돼버린 요즘이다. 하지만 절세 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봐도 알 수 있다. '不老(불로)'란 애당초 인간에게 프로그래밍 돼있지 않았음을. 하기에 식어버린 '열정'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젊음 찾기 묘책이 아닐까. 따뜻한 피가 생명의 상징이듯 열정은 젊음의 코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말했다.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가슴 설레는 일, 가슴 떨리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은 곧 파삭해진 열정에 불을 지펴 자기 삶에 잉걸불로 타오르게 한다. 귀여운 홋카이도의 할머니처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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