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철광석과 고철 등 원자재 값이 폭등하면서 곳곳에서 사재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건설현장은 현장대로 철강업체는 업체대로 "고철 사재기 때문에 가수요까지 겹쳐 가격인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며 당국이 적극 개입해 유통질서를 바로잡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기로 제강사 "고철 못 구해 공장 세울 판"
포항공단 한 철강업체의 원료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A씨는 최근 자신의 처지를 '고철 찾아 3만리'라고 했다. 그는 "2004년 '1차 원자재난' 당시보다 이번이 더 어렵다"며 "그때는 고가를 쳐주면 고철을 구할 수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중간에서 유통경로가 막혀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제강사 임원도 "고철을 확보해서 1주일만 쥐고 있으면 t당 1만5천원 이상 오르는데 나 같아도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시세차익을 노린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빚어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물가안정을 공언하고 있지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2차 원자재대란'이 숙지지 않고 이달 들면서 오히려 가열되고 있다. 특히 철강업계 주변 증세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항지역 대형 철강업체 A사 간부는 "한달 만에 t당 9만원이 올랐다"며 "이런 식으로 가면 공장을 부분적으로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고철업계 "사재기라니, 우리도 죽을 지경"
일부 대형 철강업체 측에서 고철(철스크랩)업계를 향해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해 해당 고철업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한 대형 철스크랩업체 간부는 "오히려 우리가 수요업체(철강사) 눈치를 봐야 하는데 그쪽(철강사)에서 사재기하도록 보고 있겠느냐"며 조직적인 사재기는 없다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우리도 소형 고철 수집상들에게 비싼 값에 사는 바람에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고, 포항의 한 대형 철강사에 납품하고 있는 철스크랩업체 임원은 "사재기를 하려면 야적장이나 물류비를 추가 감당해야 하는데 이런 부담을 감수하며 견뎌낼 업체는 많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한 고철상은 "오늘 사서 열흘 뒤에 파는 것을 사재기라는 말로 뒤집어씌우는 것은 수요가들의 억지"라며 "이 정도 차익은 경영기법이자 기본적인 상행위"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최대 청탁 "철근 좀"
최근 포항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인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부탁 가운데 하나가 "철근 좀 구해달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연줄을 동원해 일단 물량만 확보하면 제법 많은 시세차익을 남기고 되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외한들까지 철강제품 구하기에 나선 것.
포스코 임원 D씨는 "후판 좀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기 싫어 웬만한 전화는 안 받는다"고 했고, 현대제철·동국제강 간부나 임원들도 "가장 많이 받는 청탁이 '철근 3천t만…'이라는 것"이라며 "고정 수요가도 가격인상에 대비해 사재기하는데다 브로커성 가수요까지 가세해 시장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만 손해, 물가인상 부채질
경제계에서는 거듭되는 철강제품 가격인상을 국내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 하락과 소비자물가 인상을 부추기는 최대 요인으로 꼽고 있다. 이미 전기·전자, 자동차, 가전 등은 물론이고 아파트 분양가나 각종 관급 건설공사 비용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항지역 한 건설사 대표는 "철근과 H빔, 물막이 공사용 시트파일 값이 워낙 올라 시공비도 평균 10%가량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 포항상의 김석향 실장은 "철강재 값이 오르면 모든 소비자 물가가 오르는 것이 관례처럼 인식돼 왔다"며 "새해 들어 벌어지는 상황은 그냥 봐 넘기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