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백혈병과 싸우는 최호준군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끈 부여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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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봄에는 머리카락이 듬성한 아들이 한번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어머니 최창숙(46)씨는 아들 최호준(19)군의 눈빛만 봐도 즐겁다고 했다.

"우린 호준이만 있으면 돼요. 얼마나 착한데요. 얼마나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좋은 줄 몰라요."

무안하게도 엄마는 계속 아들 자랑만 늘어놓는다. 겸연쩍어 얼굴을 가족 앨범 사진에 묻어버렸다. 그나마 기자 아저씨가 가족 사진을 보고 싶다고 해 앨범을 꺼내놓은 덕에 부끄러운 표정을 감출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 새롭다.

기자 아저씨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캐묻는다. 기자는 난생 처음 본다. 백혈병 환자인 나를 찾아 대구에서 포항 우리집까지 왔다고 한다. 내 나이 만 열아홉, 우리 나이로 스물하나다. 백혈병은 드라마 여주인공들이나 걸리는 병인 줄 알았는데, 내가 백혈병 환자라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

고교 1학년이던 2005년 결핵에 걸려 약을 먹다 목이 부어올라 끊은 게 화근이었는지, '젊은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고 자만한 탓인지 모르겠다. 어영부영 지내다 1년 뒤에 왼쪽 아랫배에 호빵 크기만한 게 불룩 튀어 올랐다. 병원에 갔더니 배에 물이 찼다고 했다.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해 부모님은 돈을 구하러 다녔다. 결핵을 허투루 여긴 탓에 부모님은 그나마 있던 전세방을 뺐다. 아들을 잘못둔 죄로 엄마아빠가 고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를 잘못 만나 내가 고생을 한다고 말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백혈병을 알게 된 건 2006년 여름이다. 그때까지도 백혈병에 걸리면 모두 다 죽는 줄 알았다. 병원에선 골수이식 수술을 하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다만 돈이 좀 든다고 했다. 돈이 없다는 게 불편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한달에 20만원짜리 셋방이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부모님이 돈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는 참 힘들었다. 평생을 막노동판에서 미장일을 한 아빠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엄마는 "돈을 구하려 했지만 사정이 뻔한 친척들에게 손을 벌릴 수 없었다"고 기자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최호준군의 민머리는 검푸렀다.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빠져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말 한마디에도 웃음이 빠지지 않았다. 백혈병에 걸렸지만 역시 '청년'이었다. 죽다 살아났다 생각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의연히 말했다. 내장을 뒤집어 놓는 듯한 항암주사도 이제는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살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감사할 따름이라는 최군은 하지만 얘기 도중 잠시 아랫배를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경북대병원 수간호사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호준이는 빨리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야 돼요.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완치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으니까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었던 호준이의 가족들은 2년 동안 저런 모습을 봐왔다고 했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는 아들의 모습에 가족들도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호준이만 있으면 돼요." "얼마나 착한데요." "얼마나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좋은 줄 몰라요." 띄엄띄엄 말하는 어머니 최창숙씨의 말 속에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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