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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그거 참 한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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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추문 일삼은 고려말 관리들/혈세로 돈잔치 공기업과 닮은 꼴

조선 초에 편찬한 '고려사절요'를 읽다가 덮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고려 왕실과 조정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이 노골화된 후기 기사가 그런 경우다. 관리 임명과 파면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 관리들의 독직과 참소 등 온갖 비리가 횡행하는 부분은 읽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다. 고려를 낮추고 조선 창업을 높이는 편찬자의 의도를 감안해도 고려 왕실의 실정과 무너진 공직 기강을 보면 한 국가의 興亡治亂(흥망치란)이 이토록 참담할 수 있을까 싶다.

31개 공기업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가 보도됐다. 공금으로 술 먹고 보석까지 사들이는가 하면 업무에 쓰라고 준 돈을 공휴일이나 휴가 때 개인 용도로 썼단다. 직원 뽑으면서 형편없는 성적을 조작해 합격시키는 등 그 양상이 목불인견이다. 경쟁도 경영도 없는 온실 속 공기업들의 돈잔치로 국민 속이 아리다. 어느 공기업 직원의 "일도 수월치만 주머니 돈 마를 날 없어 좋다"는 말을 듣자니 이래도 되나 싶다. 삼성특검에 공직자 누구 하나 다쳤다는 소리는 없고, 뿔 바루려다 소 잡을까 걱정이라며 볼멘소리만 들린다. 경찰은 마냥 앉아서 사건 뭉개기에 바쁘고 숫제 뒷북치는 데는 일가를 이뤘다. 범법자를 쫓느라 눈에 불 켜도 모자랄 판에 귀찮다고 손사래만 치니 경찰 위해 범죄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참 좋은 자리라고 부러움 살지는 모르지만 누구 말마따나 참 한심한 사람들이다. 최근 5년 새 공기업 인력이 31.5%가 늘었는데 부채는 60.8%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이 술 넘치듯 흥청거리니 입이 벌어진다. 감사원은 경영이 방만하거나 비리가 중한 임직원은 엄중 문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 때마다 경고'문책을 되풀이하지만 여태 근절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짱 공염불이다. 총재 명칭 때문에 대통령으로부터 따끔하게 한마디 들은 어느 공공 은행장은 직원들에게 破釜沈舟(파부침주'쓰던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힐 정도의 의지)를 강조했단다. 받는 녹이 7억원을 넘는다는 그 은행장은 신정아 사건 의혹 등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사람이다. 한데 그도 2005년 취임 무렵 혁신 전도사처럼 매스컴에 오르내렸는데 그간 뭘 혁신했는지 궁금하다. 차라리 나이 서른 몇 먹은 일본 오사카부 하시모토(橋下) 지사처럼 "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 그리고 마지막엔 죽어 달라"는 말이 더 솔직하다. 오사카 사람들 감격했다는데 우리에겐 그런 감격도 호사일까.

'고려사절요' 충렬왕 29년(1303년)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정이 문란하자 감독차 원나라의 한림학사가 왔다가 돌아갈 때의 일이다. 회헌(晦軒) 안향이 교외까지 전송하는데 학사가 "白酒紅人面(흰 술은 사람의 얼굴을 붉게 한다)"이라며 시 한 구절을 읊고 대구를 지어보라고 청했다. 회헌이 머뭇거리자 학사는 "黃金黑吏心(황금은 관원의 마음을 검게 한다)"이라며 스스로 마무리했다. 이 시는 吳祁(오기) 사건을 겨냥한 것이었다. 無才無功(무재무공)해 손가락질받은 오기는 온갖 참소와 아첨으로 왕의 총애를 받아 정승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충렬왕과 태자(훗날 충선왕) 부자를 이간하고 선량한 관리들을 모함해 모두 이를 갈았으나 화가 두려워 말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오기의 죄상을 원 왕실이 알고 사신을 보냈으나 斷事官(단사관) 帖木兒不花(첨목아불화)가 치죄는커녕 뇌물을 받고 불문에 부친 것을 풍자한 것이다.

오기의 사례는 약과다. 고관들의 비리와 추태에 관한 기록은 節要(절요)에 비일비재하다. 원나라에서 수시로 사신을 보내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조서까지 반포했을 정도면 백성들의 곤궁한 삶이 오죽했을까. 역사가 그른 건지 사람이 그른 건지 모르나 역사가 반면교사라는 말도 괜한 것 같다. 후지와라 마사히코는 '국가의 품격'에서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사람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훗날 사서에 '그때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온갖 부정과 도덕적 해이로 국민 기만하기를 밥 먹듯 하니 국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고 기록된 것을 후손들이 들추다 진저리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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