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만 해도 만성 적자에 허덕이며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대구의료원.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는 싼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 병원이 10년 만에 완벽한 탈바꿈에 성공했다. 의료원 중 최대 규모인 1천여 병상을 갖추게 됐고, 내적으로는 10년 연속 흑자와 각종 기관의 경영 평가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는 등 안팎으로 알짜배기 병원이라는 평가를 듣게 됐다. 이러한 공기업 혁신의 구심점에는 10년째 묵묵히 소신 경영을 편 이동구(63) 원장이 있다. 일년에 소득세만 1억여원을 내던 '돈방석' 개인병원을 그만두고 월급쟁이 공기업 원장을 맡은 이유와 경영 수업이라고는 들어본 적 없는 '경영 전문가'의 노하우가 궁금해졌다.
◆대구의료원을 탈바꿈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공기업, 특히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적자를 면키 어렵다고 합니다. 10년 흑자의 비결이 있었나요?
"비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힘들다고 생각해서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했을 뿐이지요. 1998년 7월 여기 왔을 당시 대구의료원은 너무 어려워서 경북대병원에 위탁 여부를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직원들은 시간만 때우면 퇴근하고, 세월이 지나면 호봉이 오르고, 그러다 보면 정년이 보장되고.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먹혀들지 않았어요. 우선 내 욕심부터 버렸습니다. 봉급 외에 업무추진비나 판공비를 한푼도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어요. 운전기사도 안 쓰고 엘리베이터도 안 탔습니다. (실제 이 원장은 기자와 함께 병원 곳곳을 돌아보며 내내 계단을 이용했다.) 청탁은 무엇이든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탁을 주로 받았습니까?
"인사 청탁이 대부분이었어요. 안 되는 이유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입니다. 저는 인사위원회에 안 들어가고, 일반 직원 인사에 아예 간여하지 않지요. 청탁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면접위원 7명 중 관리부장뿐이다. 나머지 노조위원장이나 진료처장, 간호부장 등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낼 수 있겠나? 행여 떨어져도 난 7분의 1의 영향력밖에 없으니 너무 원망하지 말아라."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게 미안한 점도 있을 텐데요?
"공공병원 개혁을 하려면 우선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제 말을 믿고 따라와 주었어요. 한 10년 따라오니까 인근 의료원이나 병원과 임금 격차가 확 벌어졌어요. 일반병원보다 우리 직원 연봉이 20~30% 낮아요. 의사뿐 아니라 간호직, 행정직 모두 그렇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여 주었어요. 그것이 참 고맙고 미안하더군요. (이 원장은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다른 병원들처럼 임금을 계속 올리면 경영 수지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다른 병원의 연평균 임금 인상률은 5% 이상인데 우리 병원은 2%를 넘긴 적이 없어요. 앞으로 다른 수익을 창출해서 직원들에게 보다 나은 임금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실력 있는 의사는 거기에 걸맞은 임금을 지불하는 곳을 찾지 않나요?
"요즘 의료 기술은 장비의 현대화 그리고 의사가 얼마나 정성껏 진료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KTX 개통 이후에 서울로 많은 환자들이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대구 의사보다 서울 의사가 수술을 잘하고 실력이 뛰어나서일까요? 그게 아니지요. 시설 환경이 좋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면에서 대구지역이 아무래도 촌스러워요. 좀더 서울을 닮아야 해요. 우리 의료원 의사들의 봉급이 적다고 결코 의료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999년부터 우리 과장들에게 계약제, 연봉제를 실시해 왔어요. 내심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병원을 떠날 만큼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지 10년, 15년씩 재직 중인 의사들이 꽤 있습니다."
◆이동구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들
-언론에 비치는 대구의료원의 모습은 긍정적이고 우호적인데요.
"그것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이동구 원장이 언론 플레이를 잘한다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저는 언론 플레이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하고 언짢아요. 술을 일절 못 마시고, 의료원장이 되면서 골프도 끊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재주로 접대를 하나?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약분업 사태때도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약사회 간부를 제가 검찰에 고발했다는 누명도 썼고, 의사회 관계자를 만나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는데 의사회 쪽에서는 미리 사진기자를 불러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고 비난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걸로 믿고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지요." (그는 지난 세월을 떠올리는 듯 한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대구의료원이라는 조직을 대수술하는 데 반발이나 오해도 적지 않았을 텐데요.
"제가 대구의료원을 발판으로 출세하기 위해 쇼를 하고 있다는 말을 초창기에 들었습니다. 정치권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루머였어요. 너무 힘들어 그만둘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내 뜻만 옳다면 밀고 가보자고 용기 냈습니다.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의료원은 노사 평화선언을 했어요. 초창기 4년을 빼고는 내게 모든 임금협상, 단체협상까지 위임한 것이지요."
-재테크를 잘한다는 소문도 들리던데, 실제 부동산 재테크를 잘합니까?
"하하하. 제 얘기를 듣고 기자가 직접 판단해 보세요. 재테크 잘하는지 못하는지. 개원 후 3년 만에 2억원을 들고 병원터를 찾았어요. 범어네거리에 좋은 땅이 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미국에 있는 땅 주인이 팔려고 나왔는데 원래 사려던 사람이 포기하는 바람에 난감해졌다는 거예요. 6억5천만원짜리 땅을 6억원이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돈이 없어서 엄두도 못냈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마침 땅 주인이 대학 선배였어요. 어떻게든 사달라고 하는데 결국 5억2천500만원에 합의를 봤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었어요. 거래 은행에 갔더니 담보가 있어야 대출이 된다고 하더군요. 결국 돈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땅 명의부터 넘겨받고, 그 땅을 담보로 대출 받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땅값을 치렀어요. 이후 정말 놀랍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땅값이 올랐습니다. 1년도 채 안 돼 평당 2천만원에 팔라는 소문도 들었어요. 그 땅이 170평이었습니다. 아파트도 마련하면서 수차례 운이 따라서 지금 수성구에 있는 73평 아파트에 18년째 살고 있는데 현재 시가는 4억원이에요."
◆월세 살다가 소득세 1억원을 내기까지
-원래 법관이 될 생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의사가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고교 2학년때 법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의대에 가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첫째는 의사, 둘째는 법관이 되는 게 좋다고 했고, 당연히 나는 법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의대로 바꾸라니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대로 따랐을 뿐이에요." (거창하지는 않더라고 개인적인 포부는 있을 줄 알았다. 온갖 반대와 악성 루머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혁신에 성공한 원장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답변이었다.)
-경북대 병원에서 계속 남아있을 수 있지 않았나요? 야망 때문인가요?
"아니에요. 대학 교수를 13년 했는데 나올 때 집안이 폭삭 망했어요. 보증을 섰던 친척 중 한명이 부도를 내면서 살고 있던 집과 돈까지 다 날렸어요. 집을 산 분에게 사정을 해서 월세로 살았습니다. 1984년 일이에요.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였어요. 일년 정도 버티다가 하는 수 없이 이듬해 3월에 사표를 냈습니다. 개원을 했는데 주위 병원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한달에 가장 많이 벌어본 것은 얼마였습니까?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개원을 했고, 2년간 미국 UCLA에서 공부를 한 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다시 개인병원을 했습니다. 가장 많이 벌어본 것은 1988년, 1989년쯤으로 기억합니다. 한달에 6천만원까지 벌어봤어요.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중간에 미국 유학을 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대구의료원장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1998년 이곳에 마지막으로 원서를 냈을 때 그 전 3년간 소득세를 낸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어요. 3년간 연평균 1억원이 넘는 소득세를 냈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10년간 수십억원 손해를 본 셈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대구의료원은 얼마 전 문을 연 라파엘웰빙센터 412병상과 작년에 개원한 서부노인전문병원(치매요양병원) 242병상, 본관 398병상을 포함해 1천52병상을 갖추게 됩니다. 전국 34개 의료원 중 최대 규모지요. 다음달부터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장례식장도 운영합니다. 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고품격 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당장 식당 운영도 직영을 통해서 유지 비용을 최소화한다면 여타 병원들처럼 비싸게 받지 않아도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다고 봐요. 조문객들을 위해 현재 계획으로는 주차비도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직 첨단 장비를 도입하는 문제가 남아있어요. 우리 병원 환자의 50%가 영세민인 의료급여 환자들인데 이들도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지요. 이들을 위해서 고가의 의료 장비를 도입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생각입니다. 지난 10년간 고통을 감내한 만큼 이제는 조금은 돌려받을 때가 됐다고 봅니다." (이 원장의 임기는 2010년 6월말까지이다. 그는 이후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혔지만 언론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지난해 동산의료원장 이직 소문에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그는 현재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이동구 원장은?=경북 성주가 고향이며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경북중·고교를 거쳐 경북대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의과대학에서 10여년간 교수로 역임했다. 전공은 해부병리학. 1998년 대구의료원장이 된 뒤 신지식인으로 선정됐고,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회장을 역임했으며 11대와 현 12대 전국지방의료원 연합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방공기업 최초로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40시간 근무제를 끌어냈으며, 2003년 대구시 노사화합상 및 2004년 신노사문화대상 등을 받았다. 신일희 계명대 총장에 이어 주한 스웨덴 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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