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엔 나름의 패턴들이 있다. 두드러진 것은 별생각 없이 마련한 정책을 불쑥 내놓았다가, 원칙에 어긋난다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이내 거두어들이는 행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첫 작품인 통신요금 인하 방안은 전형적이다.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내리겠다는 방안은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의 원리를 거스르므로,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내 폐기되었다.
다음에 나온 영어 몰입 교육 방안도 마찬가지다. 영어 몰입 교육은 자원이 많이 들고 오래 준비해야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사교육비를 늘리고 교사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안긴다. 당연히, 비판이 거셌고 그것도 이내 폐기되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현 정권의 정치적 자산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감당 못할 정책을 서둘러 내놓았다가, 비판을 받으면, 이내 거두어들이는 행태보다 신뢰성과 권위를 효과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없다. 현 정권도 차츰 자신을 잃고 부당한 비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급기야 '한반도 대운하' 사업들까지 시들 처지에 놓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민들로부터 얻은 위임사항(mandate)이므로, 이 사업은 가볍게 폐기될 수 없다. 비록 제대로 다듬어지지 못한 계획이지만, 길게 내다보면, 사회의 기반 시설로 운하만한 것도 드물다. 특히 적자 폭이 점점 커지는 무역 수지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관광 자원이다. 반대하는 주장들은 모두 현재의 상황과 기술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몇십 년 뒤의 높아진 소득과 발전된 기술에 바탕을 둔 원대한 사업으로 제시되면, 시민들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대통령 자신이 그 사업을 짐으로 여겨 버릴 기회를 찾는 듯하다.
공기업들을 민영화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의 효율이 낮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풍자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우리에게 특히 바람직할 뿐더러 시민들이 그것을 지지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에서 손해 볼 사람들의 반대가 두려워, 그것을 미루려 한다.
이것은 차분히 내실을 추구하지 않고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형적 행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유리하면,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고 궁지로 몬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가 불리해지면, 비굴한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히, 그런 사람들이 모인 정권은 장기적으로 유화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가장 문제가 있는 것은 요즈음 현 정권이 북한에 대해 보이는 유화적 태도다. 좌파 정권들이 '햇볕 정책'이란 유화책을 추구하면서, 우리 원조가 북한 주민들을 돕기보다 북한의 압제적 정권을 돕는다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북한 정책은 그런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였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정권에 대한 지지가 낮아지자, 현 정권은 북한의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데도, 스스로 유화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와 현 정권에 대한 궁극적 위협은 북한에서 나오므로,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유화책은 늘 상대방의 경멸을 부르므로, 결국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이 대통령이야 다급하겠지만, 북한에 대한 유화책만은 삼가야 한다. 6월 25일이 다가오는데도 그 비참한 전쟁의 내력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 점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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