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이혼숙려(熟慮)기간제'를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를 시범 운영한 결과 이혼신청 취하율이 늘어 '홧김 이혼'이 줄어든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가정법원에서의 '이혼 전 상담'을 담당하는 '협의 이혼 상담위원'이라는 신분 덕분에 나는 본의 아니게 남의 이혼에 끼어드는 일이 적잖다. 상담 당번으로 정해진 날, 법원에 들어서면 상담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 시선이 먼저 오른다. 오전/오후로 나눠진 게시판의 상담예약상황을 서둘러 확인하기 위해서다. 일반 내담자들과는 달리 가정법원에서 만나는 부부들은 이혼을 전제로 하는지라 가급적 예약자가 없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는 모양이다.
이혼을 작정한 내담자들은 서로 눈도 한번 안 맞추고 시종일관 외면만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정말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가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들도 있다. 또 더러는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로 귀결되거나 '말이 안 통한다'는 탄식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오며 이혼사유를 '성격차이'로 결론 내리는 안타까운 상황도 다반사다. 그러나 예외없이, 자녀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금세 목소리가 떨리고 이내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이혼율이 높은 사회현상에 대해 가족의 해체를 이유로 걱정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결혼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혼은 부부갈등 해결의 능사가 아닐 뿐더러 설사 이혼을 선택하더라도 적지 않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이혼은 '좋다' 혹은 '나쁘다'로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지만 잘한 이혼과 그렇지 못한 이혼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부부로 살면서 어찌 다툼이 없고 욕심이 없으랴.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본격적인 사랑의 시작이고, 서로의 다름에 적응하는 것에서부터 이해와 조율로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했다. 이는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다가가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이혼을 결정하기에 앞서, 행여 내것만 주장하고 내말만 들으라고 강요하면서 상대에 대해서는 귀 막고 등돌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어 먼저 손 내미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자기점검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싶다. 생의 갈림길에서 불가피하게 이혼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 이후의 삶은 이혼전의 그것보다 더 행복하고 더 좋아야 한다. 이혼은 최후의 방법이어야지 최선의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는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고집하기보다 바람을 탈 수 있게 돛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이 먼저 변해 보는 것도 지혜롭지 않을까.
김향숙(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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