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가 전 국민적 과제처럼 된 요즘 가정마다 웬만하면 몇 개씩의 살빼기용 기구들이 있다. 그중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훌라후프. 지름 1m 안팎의 둥그런 플라스틱 테일 뿐이지만 이게 보통 기특한 게 아니다. 커피 두어 잔 값으로 한 번 사두면 지겨울 정도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실내외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어떤 차림으로든 할 수 있다. 간편하고 돈 안 들고 시간 활용할 수 있고, 전신운동까지 되니 요즘 말로 이처럼 '착한' 운동기구이자 놀이기구도 없을 성싶다.
훌라후프가 지난 19일로 탄생 50주년을 맞았다. 리처드 너와 아서 멜린, 두 미국인이 호주에서 운동기구로 쓰이던 대나무 고리에 착안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 시초라 한다. 기원전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가지로 고리를 만들어 막대에 끼워 돌린 것이나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기구로 사용했던 원통형 고리 등이 그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허리에 두른 채 빙글빙글 돌리는 훌라후프는 앞서 두 사람이 세운 장난감 회사 '웸오'의 상품 출시 1년 만에 1억 개나 팔렸을 만큼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슈퍼 대박 상품이었다. 훌라후프 운송 차량이 털리는 웃지못할 일들도 자주 벌어졌다 하니 인기를 가늠할 만하다.
허리와 엉덩이를 리드미컬하게 돌리는 훌라후프는 상당히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1960년대 당시 소련은 '미국 문화의 공허함을 상징한다'는 트집을 잡아 국내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훌라후프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도 많다. 로리 린 로멜리라는 미국 여성은 1999년 허리가 아닌 어깨와 엉덩이 사이에 82개의 훌라후프를 걸고 세 바퀴를 완벽하게 돌렸나 하면 벨로루시의 알리샤 굴리비치는 2006년 101개를 돌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50세 중년이 됐지만 훌라후프는 여전히 지구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훌라후프를 잘 돌리는 비결은 적당한 템포와 균형 맞추기가 관건이다. 너무 빠르거나 늦은 속도로는 이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빙글거리며 돌아갈 때 앞뒤좌우 위치가 불안스레 흔들거려도 곧 떨어지게 된다. '과잉'으로 치닫기 일쑤인 현대인에게 훌라후프는 '균형'의 미덕을 가르쳐준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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