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꽃피는 고래/김형경 지음/창비 펴냄

몸집 커지는 성장 아닌 '진짜 성장' 그려

'꽃피는 고래'는 성장소설이다. 김형경의 소설이 그렇듯 줄거리보다 심리를 꼼꼼히 좇으면 더 재미있다.

주인공 니은은 교통사고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세상에 홀로 떨어진 충격에 빠져 있다. 어머니는 자신을 인도 공주의 후손이라고 믿었고, 아버지는 자신을 처용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수로왕의 아내가 되기 위해 가야 땅에 온 인도 공주 허황옥과 동일시했다. 아버지는 아랍에서 온 서역 상인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처용과 황옥으로 불렀다.

아버지는 자신이 자란 곳 처용포의 자연과 전설에 대해 자주 말했다. 처용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버지는 과장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버지는 신화처럼 숨쉬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바다 생물과 고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화라니!'

나, 니은은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것은 내 인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내가 처음 본 처용포는 고기떼가 춤추고 고래가 헤엄치던 바다가 아니라 매립작업이 중단된 채 방치되던 붉은 땅이었다. 푸른 물고기가 떼지어 노닐던 바다는 정유공장의 폐수로 검었고, 새들이 새끼를 기르던 숲은 황폐했다. 그러니 설령 아버지의 처용포가 아름다웠다고 할지라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교통사고가 나던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황옥과 처용이 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간 듯 심취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유조차를 못 봤을 리 없다. 그러니 신화와 전설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화의 세계에 빠져 있느라 현실의 '유조차'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용과 황옥 놀이, 신화의 세계에 빠져 있던 순간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발아래 굵은 선이 그어지고, 모든 것이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나, 니은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 니은은 방황한다. 친구에게 화를 냈던 것도, 그래서 친구가 견디지 못하고 떠났던 것도, 못된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도,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 들르는 손님이 괜히 미운 것도, 인상을 오만상 찌푸린 것도, 결국 편의점 유리창을 깨고 쫓겨났던 것도 모두 자기 분노와 불안, 그러니까 상실감에서 기인했다.

입을 열 때마다 치명적인 것들이 튀어나왔다. 내 속에 칼날, 표창, 독침 같은 것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있는 줄 그때까지 몰랐다.

니은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내게 국화를 시들게 하는 법, 갈매기를 날지 못하게 하는 법, 숲을 황량하게 만드는 법을 물어봤으면 좋겠다. 부모를 떠나보내는 법, 친구를 화나게 하는 법도 물어봤으면 싶다. 나는 잘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은은 어린 짐승이었고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런 니은이 처용포에서 고래를 가장 잘 잡는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장포수 할아버지는 고래를 발견하는 눈도 좋았고, 고래를 향해 포를 쏘는 실력도 좋았다. 한방에 급소를 맞혀 고래를 상하지 않게 사냥했다. 바다에 고래가 말라가던 때에도 할아버지가 가는 곳에는 마치 신하가 대령하듯 고래가 나타났다. 어떤 이들은 할아버지를 대왕고래라고 불렀다. 고래들의 왕이 아니라면 그토록 고래들이 따를 리 없다는 거였다. 가끔 할아버지는 포를 쏘지 않고도 고래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눈길 한번 주기만 하면 어떤 고래들은 배를 보이며 물 위에 눕는다고 했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는 니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다.

할아버지에게도 상처가 있다. 포경금지 발표 전날 깊은 상처를 준 채 떠나보낸 고래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포경금지로 할아버지는 바다로 나갈 수 없었고, 깊은 상처를 준 고래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고래는 꿈에도 나타났다. 피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온몸에 밧줄이 휘감긴 모습인 때도 있었다.

"끌고 오지 못할 거면 쏘지 말았어야 했다. 포를 두 발이나 맞혔다면 끝까지 쫓아가 끌고왔어야 했고."

할아버지가 20년 동안이나 포경선을 부두에 묶어놓고 금지령이 풀리기를 기다렸다. 가끔 남몰래 배에 시동을 걸어 엔진이 녹슬지 않도록 했다. 기름칠하고 청소를 자주 해 20년이 지나도 어제 바다에서 돌아온 배처럼 싱싱했다. 할아버지가 내일이라도 당장 출항할 수 있도록 배를 돌본 것은 그 마지막 고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니은은 장포수 할아버지의 고래 이야기와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 배우기, 영호 언니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부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신화의 세계'를 알아 가는 것이다. 장포수 할아버지가 왜 그처럼 기억에 집착하는지, 기억하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도 알아간다.

할아버지는 '잘 떠나보내려면 잘 기억해야 한다. 잘 기억하는 것은 떠나 보낸 뒤 마음 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자신 역시 기억하는 법을 몰라서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었다고 말한다. 잘 기억할 수 없었기에 쌓아두었고, 그래서 인생이 낡은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니은은 '잘 떠나 보낸 뒤 기억하기'를 앎으로써 성장한다. 그 기억이야말로 신화이고 전설인 것이다. 신화의 세계를 몰랐던 니은은 신화의 세계를 앎으로써 성장한다. 몸이 커지고, 몇 살 때 고래 배를 타고, 몇 살 때 시집을 가는 게 성장은 아니다. 엄살, 변명, 핑계, 원망을 늘어놓지 않을 나이가 되는 게 성장이 아니다. 진짜 성장은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가지는 것임을 알게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열입곱살 소녀 니은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러나 상처를 가진 사람은 니은뿐만 아니다. 장포수 할아버지도 왕고래집 할머니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던 영호언니에게도 깊은 상처가 있고, 그들 모두 통증을 느끼고 있다. 작가는 '통증은 아이들만 느끼는 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나 겪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니은은 문자메시지와 엽서를 받기만 하던 영호언니에게 처음으로 엽서를 쓴다. 드디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이야기는 '고래와 처용포의 신화'에 관한 것이다. 아이는 교통사고로 떠나 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도, 고래 배와 함께 떠나버린 할아버지도 돌아올 것임을 확신한다. 그들은 니은의 기억 속에 잘 자리잡았고, 비로소 신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김형경은 심리학을 오래 공부했고, 심리 치유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작가는 상실감으로 비롯된 상처는 외면하고 몸부림치며 잊는 게 아니라, 충분히 경험하고 표현하고, 잘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된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씨줄에 해당하는 고래와 고래 사냥꾼 이야기는 한편의 아름답고 신비한 동화처럼 읽힌다. 272쪽, 9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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