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문화 전도사' 마크 피터슨 美 한국학 교수

나무를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우리는 전통의 소중함과 한국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잊곤 한다. 한발 떨어져 한국과 동양을 바라보는 파란 눈의 시선이 있다.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62) 미국 브리검영대 한국학 교수는 미국 내 한국학의 대가다. 벌써 40년이 넘게 한국을 지켜봤다. 한국에서 15년 이상 체류했고, 한국문화 전반에 깊은 조예를 자랑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논문으로 미국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달 20일 오후 고교 교사 12명으로 이뤄진 펠로우십 프로그램 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바쁜 방문 일정 탓에 인터뷰는 경주 양동마을과 경주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그는 커피보다 유자차를 좋아했고 한국말을 참 잘했다. 그가 꺼내 보인 여권에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30여개가 넘게 찍힌 한국입국도장들이 빼곡했다.

◆유난스런 한국 사랑

-한국에 처음 오신 게 언제였죠?

"열아홉살이던 1965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몰몬교) 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왔어요. 오기 전에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딱 두마디 배워서 왔죠. 그리고 세달 정도 지나 한국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한국말로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그 순간이 아직 기억이 나요. 한국말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고…. 그동안 한국도 많이 달라졌어요. 젊은 세대들은 한미관계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보는 것 같아요. 훨씬 성숙해졌죠."

-왜 한국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습니까?

"한국의 언어와 문화, 정신, 사고 방식이 너무 좋았어요. 한국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사실 길이 안 보였어요. 한국학을 공부해서는 직업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했죠. 대학 졸업 후에는 로스쿨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안 간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석사 하고 박사 하고 한걸음씩 가다 보니 문이 열렸고 어느새 한국학 전문가가 됐습니다."

-두 딸을 모두 한국에서 입양했죠?

"지금 18살, 15살인데요. 아내가 임신을 두번 했는데 다 자연 유산을 했어요. 그리고는 결혼한 지 18년이 되도록 임신이 안 됐어요. 1990년 지인의 권유로 입양을 신청했으니 18년 만에 아이를 낳은 셈이네요. 둘째 아이 입양할 때는 46세였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45세 넘으면 입양이 안 되거든요. 입양을 하려면 당시 보건사회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편지를 써서 담당국장님을 직접 찾아갔어요. 그런데 이분이 날 반기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대학교수다. 나이가 많아 일찍 죽어도 아이들은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말했더니 표정이 녹았어요. 설득됐다 싶었죠."

◆전생과 후생

-아직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한국 문화가 있나요?

"개 먹는 것. 제가 알기로는 유림들이 개를 안 먹었어요. 하하. 또 저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술을 전혀 안 해요. 혹자는 날 보고 술을 안 마시고 어떻게 한국 문화에 적응했냐고 하는데…. 어렵죠. 그런데 저는 술을 안 한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해요. 예를 들어 같이 관광버스를 타고 왔는데 '술 한잔 하시오' 그러면 '난 운전해야 돼요' 그래요."

-전생에 혹시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전생이 있다면 난 율곡 이이 선생의 제자였을 거예요. 율곡 선생을 대단히 존경해요.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관계도 아주 특수하고 또 과거시험이 진사, 생원, 문과가 있잖아요. 각 시험에 3단계씩 모두 9번 시험을 치는데 율곡선생은 모두 장원을 했어요. 열세살 때부터. 아주 대단해."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그렇게 될 거예요. 하하하. 다시 태어나면 북한에 태어나야 돼요. 통일을 위해. 북한 사람은 불쌍해. 얼마 전에 북한에 다녀왔는데 못살고 완전히 세뇌됐고 불쌍해요. (왜 불쌍한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냐고 물었다.) 북한에 태어난다면 통일을 위해 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가 '잘못하면 아오지탄광으로 갈 수도 있다'고 농을 던졌다.) 아, 그럴 수 있어. 바꿉시다. 크크."

◆한국은 평화와 안정의 역사

-한국 역사와 사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오셨는데요.

"흔히 한국 역사는 전쟁과 침략이 많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제대로 된 외부의 침략은 몽골 침략과 임진왜란밖에 없습니다. 병자호란도 인조가 항복문서까지 쓰긴 했지만 큰 침략이라 보기 힘들죠. 임진왜란을 보세요. 왜·명·조선 3개국이 참전했는데 일본과 명나라는 전쟁 이후에 왕조가 바뀌었어요. 그런데 조선은 피해 당사국인데도 무너지지 않았어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한국이 안정과 평화의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한국의 영웅은 군인이 아니라 학자입니다.(그가 주머니에서 만원권, 오천원권, 천원권 지폐를 꺼냈다. 옛 500원짜리 지폐도 나왔다.) 여기 보세요. 지폐의 인물이 다 학자잖아요. 한국의 상징은 선비예요."

-한국민의 지향점이 안정과 평화라는 말씀인가요?

"한국은 왕조의 역사도 길고 교체도 평화롭습니다. 예를 들어 가야가 무너질 때 지배층은 경주로 옮겼어요. 김유신은 가야에 뿌리를 뒀죠. 신라가 무너질 때도 신라의 지배층이 개성으로 올라갔잖아요. 지금 대한민국 인구의 55%가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정씨 5개 성인데 다 서라벌이야. 또 고려가 무너질 때 몇 사람이 죽었을까요? 답변은 2명. 최영하고 정몽주."(피터슨 교수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를 단숨에 읊었다.)

◆한국, 한국 사회

-1987년에 '미국인들과 광주사태'라는 논문을 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왜 광주민주화운동에 주목했습니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한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서울에 있었어요. 당시 전남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던 린다 루어스가 현장을 목격했고, 함께 논문을 쓰자고 약속했죠. 논문이 발행된 건 1987년이지만, 실은 1984년 AAS(Assosiation for Asian Studies·아시아학회)에서 먼저 발표를 했어요. 당시만 해도 전두환 정권이 언제까지 갈지 몰랐기 때문에 아주 용기가 필요했어요. 다시는 한국에 못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지요."(피터슨 교수는 이 논문에서 "1987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신군부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사태였으며 미국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습니다. 미국인으로서 어떻게 보세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보다는 수입 개방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스타일이 안 좋지. 촛불시위를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보다 강력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제가 미국 사람이지만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는 과학적인 증거는 부족할지언정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환영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 대통령이 다 불쌍한 존재라고 봐요."

-왜 한국 대통령이 불쌍한 존재인가요?

"한국 특유의 대통령 카니발리즘(President Cannibalism·대통령 식인주의) 때문이죠. 용서를 안 해요. 미국 정치가 좋은 모범은 아니지만 '로열 어퍼지션(Royal Opposition)'이라고 '충실한 야당'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복수하려는 야당이에요. 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반대세력이 복수하려는 거잖아요. 김대중 전 대통령 때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그렇고. 미국 사회에서는 당선되면 일단 두고 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꼼짝달싹 못하게 잡는 것은 너무 심해요."(대통령 식인주의는 대통령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한편,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면서 잡아먹는 것을 말한다.)

◆유교는 한국 문화의 진수

-한국 문화의 여러 유산 중에 진수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유교 사상이 한국 문화의 기둥이라고 생각해요. 유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주장을 믿지 않아요. 특히 조선 초기 유교는 가족 간의 평등한 재산분배, 부모 양계 중심, 거주지 자유, 제사는 돌아가며 지내고 족보는 남녀 함께 기록될 정도로 평등했어요. 17세기 들어서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생긴 거죠. 이런 남녀 평등의 가족 제도가 한국의 전통 가족 제도입니다."(그는 지난 3일 안동시가 주최하고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주관해 안동에서 열린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새로운 가족문화의 도전과 비전'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타자의 눈으로 본 한국의 가족문화'란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영남은 선비 문화의 본향으로 불립니다. 영남의 선비 문화가 갖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입니까?

"선비 문화를 고리타분하다거나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선비가 돼야 합니다. 유교 사상에 담긴 좋은 점들이 많잖아요. 하나는 교육열. 미국의 한국 유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에요. 또 가족과 상호 간의 믿음, 존경, 사제 관계 등 서구가 갖지 못한 좋은 점들이 있어요. 이런 문화적 자산을 잘 이용하면 21세기에 걸맞은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마크 피터슨(62)은?

미국 브리검영대 언어학 교수. 미국 내 대표적인 한국학자로 한국 문화의 전도사다. 1965년 한국을 처음 찾은 뒤 한국의 푸근한 인심과 사람에 반해 뒤늦게 한국학 공부를 시작해, 하버드대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한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일했고 국제한국언어 교육학회 부회장도 지냈다. 1996년 '유교사회의 창출-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로 해외 한국학 연구서에 주어지는 연암상을 받기도 했다. 요즘도 그는 미국 내 대학생과 교사, 교과서 집필진을 위한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국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피터슨과 발음이 비슷한 배도선(裵道善)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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