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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고 김양헌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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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 뛰어넘는 비평형식 추구 한국시 날줄·씨줄 정확히 짚어"

김형, 몇 년간의 느린 투병이었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형의 부고를 접하니 날벼락 같습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형을 생각하며 형에 대한 시를 한 편 쓰고 있었습니다. '불상유통 동기감응'이란 매혹적인 말에 매달렸다는 게 더 정확합니다. 이 말은 형이 1998년 '문학과 사회'에 게재한 '불상유통/ 동기감응'이란 글의 소재였습니다. 그때 이 여덟글자는 1990년대 우리 시 읽기의 탐침과 나침반으로 인용되었지요. 1990년 한국시의 날줄과 씨줄을 짚어가는 뛰어난 글로 한동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형의 글은 우선 미문입니다. 그 미문은 정확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떠받쳐서 그것들에 늘 서투른 나로서는 부러웠던 재능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들어서야 우리말의 흐름을 꼼꼼히 따져보게 되었다. 인간이 더럽힌 말의 얼굴을 닦아주고 자본주의에 멍든 말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말이 철철철 흘러가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은, 말을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무일 터'라는 첫 평론집의 서문은 마치 첫 시집의 머리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놀라워하고 즐거워했던 형의 글에는 무엇보다 형식의 아름다움이 미문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형이 상재한 두 권의 평론집 '푸줏간의 물고기'와 '이 해골이 니 해골이니?'에서 참으로 다채롭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오늘 형의 부음을 접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정신을 어떤 그릇에 담았는지 따져본 적 있는가? 당신의 말틀에는 어떤 영혼이 깃들 수 있는지 곰곰 생각해본 적 있는가?'라는 형의 자문이 기실 게으르고 천학비재한 나를 향한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합니다.

문인들의 문병 이후 형이 식사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곡기마저 끊으면 겨우 며칠이라는 소식도 같이 묻어왔습니다. 형의 병실 바람벽에 '청정일념'이라는 명조체의 칼날이 내 마음을 후비고 들어옵니다. 마지막까지 청정한 정신을 가지고 싶다는 형의 열망이 형과 같이 다녔던 곳과 겹쳐집니다. 강진, 흥덕왕릉, 미륵사지, 남해 노도, 지리산, 티베트의 처처는 이제 형의 부재로 바람이 거칠어지리라 생각됩니다. 병은 형이 보았던 나무와 숲을 몇 년에 걸쳐 형의 몸에 옮겼습니다. 그 나무들을 형은 기거하는 곳으로 가져갈 요량인가 봅니다. 히말라야시더가 폐에 이식되었기에 숨쉬는 게 고산지대처럼 힘들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는 듯 마는 듯 하는 형의 얼굴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 나무/ 숲의 입구를 형은 이제 천천히 봉인하고 싶은거지요. 아직도 형에게 병/ 죽음은 텍스트/ 메타텍스트 사이입니다.

오늘 나는 일찍 오면 결코 안될 부음을 받았던 겁니다.

송재학(시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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