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미술 투기꾼과 투자가

투기꾼은 '공공의 적'이다. 최근 식량가격 급등으로 아시아인 10억 명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아시아개발은행이 보고했다. 또한 30여 개국에서는 식량폭동이 일어났으며 식량가격 급등의 배후에는 '유가급등'이 있다고 세계은행이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유가급등은 투기꾼들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세계적인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가 밝혔다. 사회의 어느 분야이건간에 투기꾼들이 몰리면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건강한 문화와 생활이 파괴된다.

미술시장에도 마찬가지다. 투기꾼들이 몰려들면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2006년부터 과열되기 시작한 미술시장이 2007년에는 그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투기'보다는 '투자'라고 보도하며 시장의 활황세를 부채질했다. 비정상적인 시장임이 분명한데도 건전한 의미의 '투자'로 왜곡하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피해가 많았다. 젊은 작가들은 시장의 인기작품을 흉내 낸 아류들을 다량 생산해냈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곧 훌륭한 작가'로 인식되는 왜곡된 시각이 형성되면서 다수의 창작열에 매진한 미술작가들의 의욕을 저하시켰다. 투기 화랑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리고 소수의 투기꾼들이 일으킨 가격폭등은 작품을 즐기고 사랑하는 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투기꾼과 투자가는 엄격히 다르다.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남긴다는 것에는 같지만, 투기꾼은 이익을 위해선 상대방과 관련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투자가는 이익을 남기더라도 상대방과 관련 집단에 '성장과 이익'을 가져다주는 '윈-윈' 관계를 취한다. 문화가 발달하려면 이런 투자가가 많아야 한다.

미술작품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투자가는 '사랑'과 '애정'이 있지만 투기꾼에게는 애정이 없다. 단순한 '투자 상품'에 불과하다. 투자가는 구입한 작품을 오랫동안 사랑을 가지고 즐기면서 작가의 성장과 인생의 후원자가 된다. 그러나 투기꾼은 구입한 작품을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다가 가격이 오르면 금방 시장에 되판다. 때로는 비신사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가격을 폭등시킨 후 미련 없이 손을 뗀다. 이후에 남는 피해는 고스란히 작가와 관련자들의 몫이다.

나는 미술 투기꾼들이 싫다. 초청 강연이나 전시회 오픈에 참석하면 컬렉터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 중에 투기꾼과 투자가들이 섞여 있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실체가 드러난다. 투자가를 만나면 대화가 즐겁지만 투기꾼들과의 대화는 그렇지 못해 자리를 피한다. 건전한 투자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최규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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