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기록에 대한 집착은 남달랐다. 그 대표적 응축이 현재 국가기록원 부산지원 등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책 수로는 무려 2천77책에 이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500년 이상을 이어온 왕조는 드문데 그 가운데 472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의 역사를 기록한 책은 '조선왕조실록'이 유일하다. 덕분에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국보 제151호이고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실록은 정치적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왕이 죽으면 다음 왕 때에 편찬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 실록의 기본 자료가 된 것이 史草(사초)이다. 사관들이 국가의 각종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왕과 신하들의 나랏일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사초는 임금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다. 희대의 폭군이던 연산군조차 사초를 보려 했으나 반대가 워낙 심해 抄錄(초록)하여 볼 수밖에 없었다. 사초는 비밀 유지가 필수였다. 그래야 사관들이 나랏일의 잘잘못은 물론 인물에 대한 비평이나 기밀사무 등을 직필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실록 편찬에 사용된 후 사초는 물로 씻어 담긴 글을 지웠다. 이것을 洗草(세초)라 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니 재활용의 뜻도 있었지만 비밀을 유지하는 역할이 컸다. 사초 내용이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미리 막은 셈이다. 어렵게 완성된 실록은 유출이나 훼손에 대비해 오대산 등 심심산중에 5대 사고를 만들어 지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업무 처리 시스템인 e지원 시스템을 복제하고 자료를 자신의 私邸(사저)가 있는 봉하마을로 가져가 논란을 빚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연구와 저술 목적'이라고 했다지만 현 청와대는 '퇴임 후 친노 성향의 세력 구축'을 위해 이 시스템을 필요로 한 것임을 뒷받침해 주는 방증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정도를 걸었다면 불필요한 논란이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개인 노무현'이 재임 시절 축적된 200만 건이 넘는 통치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국방과 안보, 대북정책에 관련된 극비의 문건까지 포함하는 국가기밀이 국가기록원 밖에 나와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정창룡 논설위원 jc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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