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한가한 날에 주변의 산사를 찾는 일은 각박한 세상살이에 한결 여유와 즐거움을 더해준다. 사방천지에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라면 심신의 피로를 푸는 데에도 더욱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산사를 찾는 일이 꼭 유쾌한 추억으로 남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기대하고 오랜만에 찾았던 사찰이 이런저런 중창불사로 인하여 확연히 현대식으로 변모되어 있을 때는 솔직히 김이 샌다.
더구나 전에 없던 석조물들이 뽀얀 색깔의 화강암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경내 여기저기에 잔뜩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은 때때로 개운치 못한 기분을 안겨준다. 제 아무리 재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탓이겠거니 받아들이려고 해도, 그러한 풍경은 여전히 어색하고 마뜩잖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설치된 사찰 내의 석조물 가운데는 결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들도 자주 눈에 띈다. 더욱이 이것은 비단 한두 사찰의 경우가 아니라 이미 전국의 어느 사찰을 찾더라도 빠짐없이 발견되는 현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 중에 가장 눈에 거슬리는 존재는 이른바 '카스가 석등'이다. 이 석등은 일본 나라(奈良)의 카스가신사(春日神社)가 그 원산지이며,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러한 양식의 석등을 일컬어 '카스가 도로(春日燈籠)'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언뜻 보면 우리 나라의 석등과 잘 분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 차이를 인지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옥개석(屋蓋石)의 모양이다. 특히 '귀꽃'이 장식되어 있어야 할 자리에 '카스가 등롱'에는 '궐수(蕨手·와라비테)'라는 것이 붙어 있다. 이 말은 고사리 손과 같은 모양이라는 뜻인데, 어찌 보면 달팽이를 뒤집어서 얹어놓은 듯한 형태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신사에나 어울리는 이러한 석등이 어찌하여 우리의 사찰에 버젓이 설치되기에 이른 것일까?
그 연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식 석등이 우리 나라에 처음 상륙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 분명하다. 그 시절의 사진자료를 뒤져보면, 조선 내에 만들어진 일본식 사찰과 신사에는 물론이고 일본인들의 개인 정원이며, 하다못해 일본요리점이나 유곽과 같은 곳에서도 이러한 석등이 장식되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그러나 일제 때에 이 땅에 유입된 일본풍의 석조물들은 해방 이후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 파괴되어 사라졌거나 거의 드문드문 남아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의 산사에 이토록 일본식 석등이 그득해진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이유는 국도변을 지나다가 자주 마주치는 석물공장의 현황을 한번 살펴보는 것으로 대뜸 파악할 수 있다. 어느 석물공장이나 거기에서 파는 물건으로 내놓은 석등의 대다수가 바로 이 '카스가석등'인 것이다.
듣자하니 1970년대 수출주도시대에 일본에서 주문받아 이 석등을 만들어보냈으나, 그 후 수출부진으로 물건이 남아돌자 이것을 자연스레 국내판매용으로 돌린 탓에 이러한 현상이 급격히 빚어졌다는 얘기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흐르면서 이것이 일본식 석등이란 사실은 애써 잊혀진 채 오늘날에도 복제되어 대량생산되면서 석물공장의 판매대에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성껏 석물을 시주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정체가 일본의 신사에나 쓰이는 물건이라면 그것만큼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순우·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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