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1900년경까지의 약 300여년 동안 최고의 공연 장르의 하나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또한 가장 큰 쇼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대두한 영화라는 신선하고 파격적이며 자극적인 장르는 완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그리하여 그 동안 예술 산업이나 쇼 비즈니스라면 으레 오페라를 떠올리던 재능 있는 예술인들이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영화 촬영장으로 떠나버렸다. 오페라 무대 뒤에서 활개치던 천재들이 모두 할리우드로 모여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어찌되었건 오페라가 최고, 최대의 예술 산업이라고 자랑하던 왕좌를 영화에 물려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등장은 오페라의 몰락과 동의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행히도 그렇지만은 않았다. 영화와 오페라를 동시에 사랑하는 몇몇 탁월한 예술가들에 의해서, 이제 오페라는 스크린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즉 오페라를 영화로 만든 '오페라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진 것이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1918~2007) 감독이 1975년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극장용 영화로 만들었다. 이것은 비록 최초의 오페라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본격적인 오페라 영화의 시작으로서, 후배 감독들에게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그는 단순히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영화로 찍은 것이 아니라, 스웨덴 시골의 한 여자 어린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작은 오페라하우스에 가서 난생 처음으로 오페라를 보는 과정이 잔잔하게 나온다. 또한 화면 역시 일반적인 영화 그대로가 아니라 실제 오페라 무대에서 올려지는 세트와 의상 등의 분위기를 그대로 내고 있어서, 예술적인 오페라 영화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오페라 영화들은 영화만을 쫓던 관객들이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진짜 오페라 공연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많은 감독들이 오페라를 필름으로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프랑코 제피렐리는 극장에서의 상연을 목적으로 오페라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그의 대표작인 베르디의 '오텔로'는 우리나라 명보 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하였으며, 그 외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유명하다. 프랑스의 천재 오페라 연출가인 장 피에르 포넬은 자신의 많은 오페라 무대들을 다시 영화로도 제작하였다. 덕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감독하던 중에 극장 세트가 무너져서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린 이 전설적인 천재 연출가의 작품들을 우리는 지금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율리시즈의 귀환', '포페아의 대관' 등 3부작을 필두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폰토 왕 미트리다테',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라 체네렌톨라' 등은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는 그의 DVD들이다. 체코의 영화감독인 베른트 바이클 역시 적지 않은 오페라들을 영화로 만든 사람이다. 그는 가수 대신에 영화배우를 기용하고,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더빙하였으며, 몇몇 부분을 나름대로 편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을 비롯하여, 마스네의 '베르테르', 도니체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등이 대표작이다. 또한 지휘자 카라얀도 자신의 몇몇 작품을 직접 영화로 만들었으니,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 베르디의 '오텔로', 비제의 '카르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등이 남아있다.
그 외에도 프란체스코 로시의 '카르멘', 클로드 다나의 '멕베드', 안드레아 안더만의 '라 트라비아타', 보리스 아이아페티안의 '노르마' 등이 볼 만한 오페라 영화들이다.
박종호(정신과 전문의·오페라 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