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직업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먹고 사는 데에만 있지 않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볼 때 뿌듯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직업을 갖는 또 다른 목적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보면 화성산업의 장진수(49) 현장소장(금성면 해안도로개설공사)은 직업을 통해 '자부심을 얻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장 소장이 자신의 직업에 왜 '자부심'을 갖게 됐는가를 알려면 먼저 그의 이력을 살펴보는 게 순서다. 그가 화성산업에 입사한 건 1979년 2월1일(장 소장은 30년이 지났지만 입사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벌써 입사한지 30년이 됐군요. 대구공고 토목과를 다녔는데 졸업 전 화성산업에서 석달 정도 실습을 했고 그 인연으로 회사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고교에 다닐 때 측량실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토목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다.
입사 후 30년 동안 그가 거친 토목 현장은 모두 13곳. 다소 장황한 감도 있지만 그가 땀을 흘린 현장을 훑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30년 건설인생이 고스란히 스며 있기 때문이다. 대구 신암지하차도, 경주 감포항 방파제, 대구 평리지하차도, 대구농고 신축, 대구 매호지하차도, 강원 태백 황지지구택지개발, 울릉도 저동항 방파제, 제주도 성산포관광단지 진입도로, 대구 월배차량기지, 남해고속도로 내서-냉정 확장, 경남 창녕-성산간 도로 확·포장, 경남 하동 금성면 해안도로 개설 공사 등. 공사기간이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5년까지 되는 현장을 두루 누볐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특성상 객지생활을 한 것도 무려 20년이다. "결혼을 하고 울릉도에 신혼살림을 차렸지요. 저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별로 고생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하자마자 낯설고 물설은 울릉도에 사느라 아내가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제가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다투기도 했지만 어느새 아내와 두 딸도 남편과 아빠를 잘 이해하게 됐지요" 그의 울릉도 얘기는 조금 더 이어졌다. "제가 방파제 공사를 할 86,87년 무렵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 유행했지요. 방파제가 제대로 없어 태풍이 불면 배가 부서지곤 했는데 공사 장비를 동원해 주민들의 배를 안전하게 해안 위로 올려준 적이 있어요. '배를 지켜줬다'며 주민들이 고마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장 소장은 부장급으로 화성산업 현장소장 가운데 가장 고참. 그가 직장에서 경력은 물론 실력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데에는 무엇보다 남다른 노력이 밑바탕 됐다. 고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그는 직장을 다니며 영남대 토목공학과(야간)를 졸업했다. "고교만 졸업한 탓에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대졸 입사자와 월급에서 차이가 적지 않았어요. 독한 마음을 먹고 주경야독을 실천하게 됐지요.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대구의 건설현장으로 발령을 내주는 등 윗분들이 많은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기사 1급에다 7년간의 경력이 있어야만 응시 가능한 토목시공기술사 자격증을 딴 것도 장 소장의 부단한 노력 덕분. 공부를 시작한지 14년만에 토목시공기술사 됐다. 국내에는 5천여명 뿐이고 화성산업에는 7,8명에 불과할 정도로 토목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자격증이다.
화성산업의 도로·항만 등 토목 분야 연간 매출액은 1천여억원 가량. 매출액이 아파트를 비롯한 건축분야(70%)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지만 장 소장을 비롯한 토목분야 직원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화성이 토목을 밑바탕으로 굴지의 건설회사로 성장한데다 도로·항만 등 토목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휴일도 없을 정도로 일에 매달려 살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보람도 크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제주도나 울릉도 등 전국을 여행할 때엔 시간을 내 제가 공사를 맡았던 곳을 다시 찾습니다. 구조물을 둘러보며 혹시 이상이 없는지 체크하고, 때론 감회에 젖기도 하죠. 공사 당시에 만났던 현지 주민들을 만나 옛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현재 장 소장이 공사현장에서 데리고 있는 직원은 30명 가량. 중장비가 대거 동원되기 때문에 직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객지생활을 하는 직원도 많고 거친 공사현장에서 일하다보니 직원들간의 인화가 가장 중요하지요. 한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관차 역할을 한 건설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예전과 같지 않은 데 대해 장 소장은 안타까움도 나타냈다. "어떤 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한 아들이 땡볕에서 땀을 흘리며 측량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뜨거운 모래 바람이 부는 중동에서 땀흘린 근로자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존재하는 것처럼 지금도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설인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튼실하게 유지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답지 않게(?) 장 소장은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쌓인 스트레스는 매일 1시간 가량 걷기운동을 하며 풀고 있다. 화성산업의 경영 방침과 마찬가지로 장 소장은 직장 생활에서 약속을 꼭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건설회사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발주처와 하도급업체, 납품업체 등 거래처는 물론 고객과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큰 뜻도 있지요. 저를 비롯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는 데 노력했으면 합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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