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니아와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인종차별 국가에서 당당한 게이로 살아가기

게이 천국,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크리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난 게이 친구이다. 나에게는 원래 모델 뺨치게 키 크고 잘 생긴 외모에 여자처럼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을 가진, 거기에다 예술적인 감각과 남다른 감수성까지 갖춘 '게이친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런 친구가 나를 베스트 프렌드로 여겨준다면 얼마나 멋진가.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게이친구까지 완벽한 '트라이앵글 베스트 프렌드'를 가진다면 나의 인생이 완성될 것 같았다.

크리스는 모델 뺨칠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준수한 외모에 2미터에 가까운 장신이었다. 그리고 내 주위의 웬만한 여자친구들보다 훨씬 더 다정다감하고 세심했으며,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독특하고 개성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특히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길 좋아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정치·경제·역사·종교·문학·영화·다큐멘터리까지 세상의 온갖 문제를 들춰내며 지구를 열 두 바퀴는 돌아야 끝이 났다. 그는 한번도 남아공을 떠나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아프리카까지 여행온 한국여자인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 역시 논쟁을 좋아했으므로 우리는 밤이 새도록 함께 지구를 구석구석 파헤쳤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는 멋진 친구가 되었다. 한국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인생의 로망들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쉽게 이뤄진다. 그래서 여행은 멋지다.

사실 게이친구를 갖고 싶다는 나의 로망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소녀적인 감수성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아프리카에서 알았다. 내가 크리스를 만난 케이프타운(남아공의 입법수도, 인근의 희망봉이 유명하다)은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이들의 천국'이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서너차례 대규모 '게이축제'가 열리며, 곳곳에 게이전용 호텔·레스토랑·여행사까지 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국적의 게이들이 모여사는 게이구역도 있다.

"이렇게 좋아진 게 불과 십여년 전이야. 옛날엔 게이라는 사실만으로 목숨을 위협받았으니까." 크리스의 말인즉, 남아공에 그 유명한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있었던 시절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게이도 철저히 법적 차별의 대상이었다. 게이들이 출입하는 곳은 마치 흑인 활동가들의 아지트처럼 경찰의 공격을 받았고, 길거리에서 게이가 발견되면 여지없이 끌려가서 처벌받았다. 하지만 게이들에 대한 이러한 억압은 전세계 유례없는 70여개의 '게이 인권단체'들을 생겨나게 했으며, 1990년대 초반부터 게이의 법적 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가두시위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축제'로 발전했다. 94년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새로운 흑인정부가 들어서면서 남아공은 세계 최초로 게이의 권리를 헌법에 보장한 나라가 되었다. 크리스는 그 역사의 중심에서 당당히 게이로 살아온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여행은 세계와 역사를 1과 2, 흑과 백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한다. 남아공을 단지 백인이 흑인을 차별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부끄러웠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의 역사 속에는 게이의 투쟁이 있었고, 나와 같은 아시아계 이민족과 혼혈인들의 투쟁도 있었다. 여행은 그들의 현재 속에 들어가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함께 배우고,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타인과 나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소통의 과정이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아침, 크리스는 자신이 만든 '개구리 부처상'을 보여주었다. 크리스는 동양의 불교사상에 관심이 많았고 또 스스로 불교신자임을 자처했다. 아마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기독교를 조금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 데다 불교는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기독교보다는 좀 더 너그럽게 자신의 정신세계를 품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듯 했다. 내가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했던 것 만큼 크리스 역시 아시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프리카를 꿈꾸었던 것처럼 그는 아시아를 꿈꾸었다. "아시아는 신비한 영감을 주는 곳이잖아. 그 곳은 여기보다 자유롭고 멋질 거야." 뜻밖에도 그는 게이로서의 인생의 대안을 아시아에서 찾고 싶어했다. 내겐 그의 꿈이 너무나 터무니없이 여겨졌지만 말도 안 된다고 단정짓지는 않았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아시아로 여행 온(그래서 아시아를 배운) 아프리카인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뜻밖의 가능성과 꿈을 발견해낼지도.

미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