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몰려드는 '한방 인생'…계속되는 '유혹의 바다'

▲ 28일 오후 대구 북구의 한 경품게임장에는 한낮의 바쁜 시간임에도 손님들이 빼곡했다.
▲ 28일 오후 대구 북구의 한 경품게임장에는 한낮의 바쁜 시간임에도 손님들이 빼곡했다.

최근들어 2년 전 사라졌던 '바다이야기'가 새로 부활하고 있다. 일단 문만 열면 2, 3개월 안에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위험을 감수하는 업자가 한둘이 아니다. 불경기·고유가 여파로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올 초부터 스멀스멀 유행하기 시작한 '경품 게임장'은 겉모양만 바뀌었을 뿐, 예시 기능이나 프로그램 위·변조, 경품 환전 등 예전 바다이야기의 사행성을 고스란히 담고 곳곳에 간판을 내걸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대구의 경품게임장은 5월 25개에서 7월 73개로 두달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미신고 불법업소까지 합하면 그 수는 수백개에 달한다. 한탕을 노리고 공공연히 영업에 나선 사행성 게임은 예전보다 더욱 교묘한 모습으로 진행중이었다.

◆수법은 똑같다=28일 오후 3시쯤 대구 북구 산격동의 한 게임장. 30여대의 게임기 앞으로 20여명의 고객이 들어차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부분 2, 3대씩 걸쳐놓고 1만원권을 수시로 넣었다. 돈만 투입할 뿐, 직접 게임은 하지도 않는다. 음악소리, 포인트 쌓이는 음향 등 모든 것이 바다이야기와 똑같았다. 최근 유행하는 경품게임은 '자동차 레이싱'으로 1만원권을 넣으면 각 코스당 40초씩 20번을 자동차가 '알아서 달린다'. 오락게임이 아니다.

"어떻게 작동하는 것이냐?"고 묻자 한 아주머니는 "자동차가 도로에 깔린 연료 아이템(Item)을 먹으면 포인트가 쌓이고 음표로 예시기능이 나타난다"며 "포인트는 경품이 돼 아래로 떨어진다"고 했다. 실제 고객들의 발 아래에는 빨간 물통이 놓여 있고 쓸모없어 보이는 경품 열쇠고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에게 열쇠고리에 대해 묻자 "당연히 돈이 되니 이짓을 하지 안 되면 왜 오겠냐?"고 했다. 환전해 주는 곳을 물으니 "근처 전당포에 가면 돈으로 바꿔준다"고 귀띔했다.

최근 유행하는 경품게임장은 프로그램 위·변조도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현장에서 적발하기 어렵다. 경찰이 위·변조 가능성이 큰 곳에 단속을 나갔을 경우 메모리카드나 하드디스크를 분석하기도 전에 다른 게임프로그램으로 교체해 단속을 비웃는다.

◆불법 환전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같은 날 오후 2시. 형사 4명과 서구 비산동 한 경품게임장 앞에 잠복했다. 탐색조가 환전소 위치를 체크했고 급습조는 게임장의 영업 여부를 확인했다.

"손님이 직접 경품을 돈으로 바꾸는 장면을 잡아야 합니다. 검은 봉지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을 덮쳐야지요."

잠복한 지 1시간 정도 흘렀다.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 봉지를 들고 게임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는 환전소로 추정되는 전당포로 향하지 않고, 길가에 세워진 회색 승합차로 들어갔다. 형사들이 승합차를 빙 둘러 급습했다. 형사들은 승합차 안에서 환전을 해주던 30대 중반의 K씨를 현장에서 붙잡았다. 승합차 내부에는 경품 손목시계, 지폐 다발, 환전 장부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K씨는 "이곳에서 24시간 먹고 자면서 환전을 해준다"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위치를 자주 옮긴다"고 했다.

경찰이 이날 붙잡은 환전상은 지능화되고 교묘해지는 환전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기존 바다이야기에서 불법 환전소로 이용됐던 전당포들이 최근에는 컨테이너 환전소나 차량내 환전으로 바뀌는 추세다.

경찰 한 관계자는 "중간 환전상이 등장하면서 불법 환전 현장을 적발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며 "손님으로 가장한 업주나 환전상이 충전용 카드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불법 환전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가방을 멘 환전업자가 오토바이로 이동하면서 경품을 돈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손님들이 딴 경품을 택배기사를 불러 한번에 이동식 불법 환전소에서 교환해주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경품이 골프공, 책갈피, 휴대폰 고리, 목걸이, 시계 등으로 다양해졌지만 나중에 돈으로 바꿔주는 형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며 "경품이 돈으로 바뀌고, 업자는 돈이 되기 때문에 경품 게임장이 우후죽순 늘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임상준기자 zun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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