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퍼부은 비로
학교 앞 샛강 넘치는 날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그런 날은
누나를 졸라서
사카린물 풀어먹인
밀이나 콩 볶아
어금니 아프도록 씹으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거나
배 깔고 엎디어 만화책을 볼 때면
눅눅하고 답답한 여름장마도
철부지 우리에겐 즐겁기만 했고
아버지 수심에 찬 주름진 얼굴도
돌아서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
형과 나는 은밀한 눈빛으로
내일도 모레도 계속 비가 내려
우리 집만 떠내려가지 말고
샛강물은 줄지 않기를
낄낄거리며 속삭이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간절히 쉬고 싶을 때는
샛강 넘치는 꿈을 꾼다
시인으로보다는 입시 전문가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수능시험 친 날이면 어김없이 티브이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자식 대학문제만큼은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주위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은 신세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탁, 저런 부탁으로 늘 분주하게 살다보니 "간절히 쉬고 싶은 때"도 적지 않았나보다.
학창시절에는 샛강 넘쳐 학교 쉬는 날보다 더 큰 보너스는 없었다. 밀 볶고 콩 볶아 먹으며 만화책 보는 즐거움. 유년의 그 행복했던 기억이 자주 떠오르는 까닭은 그만큼 이 현실이 고단하단 뜻 아니겠는가. "아버지 수심에 찬 주름진 얼굴"이 내 얼굴이 되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생활이라는 이 덫, "샛강 넘치는 꿈"이라도 우리 자주 꾸어보자고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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