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장마철 ―낙동강 6 /윤일현

밤새 퍼부은 비로

학교 앞 샛강 넘치는 날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그런 날은

누나를 졸라서

사카린물 풀어먹인

밀이나 콩 볶아

어금니 아프도록 씹으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거나

배 깔고 엎디어 만화책을 볼 때면

눅눅하고 답답한 여름장마도

철부지 우리에겐 즐겁기만 했고

아버지 수심에 찬 주름진 얼굴도

돌아서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

형과 나는 은밀한 눈빛으로

내일도 모레도 계속 비가 내려

우리 집만 떠내려가지 말고

샛강물은 줄지 않기를

낄낄거리며 속삭이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간절히 쉬고 싶을 때는

샛강 넘치는 꿈을 꾼다

시인으로보다는 입시 전문가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수능시험 친 날이면 어김없이 티브이에 등장하는 유명 인사.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자식 대학문제만큼은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주위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은 신세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탁, 저런 부탁으로 늘 분주하게 살다보니 "간절히 쉬고 싶은 때"도 적지 않았나보다.

학창시절에는 샛강 넘쳐 학교 쉬는 날보다 더 큰 보너스는 없었다. 밀 볶고 콩 볶아 먹으며 만화책 보는 즐거움. 유년의 그 행복했던 기억이 자주 떠오르는 까닭은 그만큼 이 현실이 고단하단 뜻 아니겠는가. "아버지 수심에 찬 주름진 얼굴"이 내 얼굴이 되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생활이라는 이 덫, "샛강 넘치는 꿈"이라도 우리 자주 꾸어보자고요.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