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4억원짜리 158㎡(48평형) 대구 수성구 신규 아파트에 입주한 기업체 간부 A씨. 중견기업에서 연봉 6천만원을 받으며 번듯한 집에 살지만 속이 곪아터져 가는 중이다. 2억4천만원을 대출받아 들어가는 한 달 이자가 135만원. 기존에 살던 아파트를 팔아 충당하려 했는데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 바람에 5개월을 버티다 두 달 전 어쩔 수 없이 전세로 돌렸다.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1가구 2주택자가 된 그가 부담하는 이자는 금리 상승으로 8개월 전에 비해 한 달에 12만원가량 더 나간다. 아파트를 처분하면 물어야 될 양도소득세가 걱정이긴 하지만 한시바삐 처분해서 대출금을 일부라도 상환해야만 하는데 팔릴 기미가 전혀 없다.
A씨 경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계가 지금 심각한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요인이 부동산 거래 실종 때문. 이들에겐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길만이 위기 탈출의 유일한 방책이다.
심각성을 어느 정도 깨달은 정부·여당이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는데도 시장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시장에 먹힐 대책은 없이 땜질식 처방을, 그것도 수도권 위주로 내놓는 탓에 지방 부동산 시장은 미동도 않고 있다.
지난주말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 부과기준을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부동산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종부세 대상 주택 과세기준을 현행 6억원 이상에서 9억원으로 올려 세금 부담을 경감시켜보자는 것. 가구별 합산 과세에서 개인별 과세로 전환하는 것도 적극 검토한다고 했다. 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전국 933만3천여 가구 중 공시가격이 6억원을 넘는 곳은 25만6천여 가구이고 9억원을 넘는 가구는 9만4천여 가구인데 99%가 수도권에 있다. 종부세 과세기준 상향 조정은 수도권의 가진 자들을 위한 선심정책이란 비판 때문에 이번주 들어서면서 슬그머니 사그라지는 분위기다.
분양가상한제 완화도 마찬가지. 분양가가 오르는 곳은 수도권이지 지방이 아닌데도 무슨 큰 선심 쓰듯이 기준을 완화한다고 발표하다 보니 지방 부동산은 미동도 안 한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한두가지 정책 발표해서 지켜보다가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부는 한가한지 모르겠지만 지방의 상황은 그렇게 팔자좋게 기다릴 처지가 못된다.
건설업체들의 자금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임직원들은 실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은 내수 진작 효과가 가장 큰 업종이기 때문에 건설 불경기는 서민경제 불안과 직결된다.
대구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공식적으로 2만가구를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대구의 미분양 가운데 70%가 전용면적 85㎡ 이상의 중대형이라는 점. 빈약한 대구 경제력으론 해결이 안된다. 돈을 가진 수도권의 구매희망자들을 지방으로 끌어와야 한다. 그럴려면 투자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순서. 투자를 하려면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계적 요법보다 집중적 처방이 필요하다. 정부의 추가 대책이 계속 예견되는 상태에서 섣불리 집을 사고 파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만 침체시킬 뿐이다.
시급한 것이 거래를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미분양 주택에 한해 1가구2주택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야 한다. 정부 및 정치권 일각에서 현행 50% 세율을 낮추자고 하지만 이런 정도론 유인책이 될 수 없다. 투자 수익을 내서 절반 가량이 세금으로 나가는 상황이라면 아무도 부동산에 투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1가구2주택 중복대출 금지 등 대출규제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자기 자본만으로 억대가 넘는 집을 사기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출을 묶어 버리니 집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그라지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취득·등록세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것이 맞다.
지방자치단체와 건설업체들이 한목소리로 이런 조치들을 취해 달라고 눈물겹게 건의를 해왔지만 아직도 정부는 미온적이다. 이래서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기업과 가계가 무너지면 정부가 무슨 존재 가치가 있는가.
최정암 경제부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