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0℃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도심 뙤약볕 아래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옷을 적신다. 물이 흐르는 계곡과 짙은 그늘이 드리운 숲이 그리워 찾은 곳은 대구도심에서 4.5km밖에 있는 앞산. 그 중에서도 앞산공원 주차장이 있어 차량 접근이 용이한 큰골이다.
앞산관리사무소를 지나 맞닥뜨린 낙동강전승기념관 앞은 추억의 장소이다. 1970년대 초'중'고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한번 쯤 소풍을 왔던 곳. 그 뿐만 아니다. 병이나 찌그러진 깡통에 석유를 담아 나무집게로 송충이를 잡았고 짓궂은 개구쟁이들은 집게에 잡힌 송충이로 짝궁을 놀려대기도 했던 바로 그 장소이다.
추억을 뒤로하고 왼편 숲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도 숲 안 공기는 조금 전 도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한 솔향이 폐부 깊숙이 들어오면서 공해에 찌든 때를 한풀 벗겨낸다. 큰골로 향하는 숲길은 사방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빽빽하다. 숲에 든 지 5분 남짓. 마주치는 등산객의 발자국 소리와 모이를 좇는 박새들의 지저귐만 귀를 간질인다.
'천연기념물 387호'인 가침박달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참나무 천연림이 자생해 도시녹지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앞산의 숲답게 큰골 등산로에는 진박새'곤줄박이'청설모'다람쥐 등이 눈에 띈다. 땀을 훔치려 잠시 멈춘 나무쉼터 옆에선 정면으로 보면 약간 큰 나비넥타이 형상을 한 진박새가 낙엽더미를 헤치고 있다.
숨을 헐떡일 즈음, 은적사에 다다랐다. 절 마당 앞 무성한 숲이 강렬한 태양빛을 죄다 튕겨내고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은적사는 공산전투에서 패해 견훤에게 쫓긴 왕건이 이곳의 굴에서 3일간 숨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 그 3일 동안 안개가 짙게 깔렸고 굴 입구엔 거미들이 줄을 쳐 주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던 왕건은 후에 절 이름을'숨어 지냈던 곳'이라 뜻의 은적사(隱跡寺)로 명했다고 한다.
은적사를 나와 왼편 오솔길로 들어 5분정도 비탈길을 오르면 잘 닦여진 평탄한 흙길 1.2km가 만수정 약수탕까지 이어진다.
이 길 왼쪽엔 가파른 산등성이가, 오른쪽엔 낭떠러지가 계속돼 마치 산성의 성곽 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폭신한 흙길이 길게 뻗어 있고 머리 위로는 숲이 터널을 이루듯 햇볕을 가리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는다. 혼자 걷기보다 친구와 함께 이야기라도 나누며 걷기에 제격이다. 도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앞산의 속살을 만끽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길이다.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가 가까워질 무렵, 만수정과 약수탕이 눈앞에 들어온다. 많은 피서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계곡바람을 맞고 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과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 앞에서 몇몇 등산객들이 땀을 씻어내고 있다. 그들을 따라 맑은 계류를 두 손에 담아 얼굴로 가져가자 차가운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2km남짓 걸으며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리며 숲이 엮어낸 짙은 푸르름에 몸과 마음이 동화되듯 상쾌하다.
불가에선 "생각을 한 곳에 모아 욕심이 동하게 하지 말고 뜨거운 쇳덩이를 입에 머금고 목이 타는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 숲과 함께 한 두어 시간, 그 청아함에 취해 잠시 세사의 번민을 잊을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대덕사 방향으로 잡은 하산 길. 나무껍질과 둥지로 지은 대덕쉼터에 들러 그늘의 고마움을 접해보고 케이블카 타는 곳에 설치된 큰골 헬스장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기구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 아랫길로는 붉은 벽돌로 쌓은 우재 이시영 박사의 순국기념탑과 처음 보았던 낙동강 승전기념관이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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