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주년 광복절'이 지나갔다. 하지만 64주년을 맞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하에서 벗어난 '광복절'을 대신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리는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일면서 정부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방안은 정부 차원에서 전혀 검토한 적 없다"고 밝혔다. 당초 정부는 '건국 60년 및 63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을 추진하려다 광복회가 불참을 검토하겠다며 반발하자 다시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으로 바꾸었다. 광복이면 어떻고, 건국이면 어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순진무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국절이 옳다."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은 8월 15일은 광복의 의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건국절로 추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2006년 7월 31일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동아일보 '동아광장'에 기고한 글에서 출발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헌법은 2천년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했고 국민 모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했다. 제헌, 그것의 거대한 문명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반면 1945년 8월의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은 일제가 무리하게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미국에 의해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울러 광복은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이를 근거로 뉴라이트계는 건국절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제안에 따라 정부는 지난 4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건국60년기념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정치권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하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과 일부 단체들은 "건국 60주년이라는 용어가 헌법이 보장하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건국60주년기념사업단 측은 "오히려 헌법적 실체로서 건국은 1948년이 맞다고 본다"며 "헌법적으로 국가를 이루는 요건인 영토·국민·주권을 충족하는 기점은 1948년이며, 이때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까지 생겨 법적 실체로서의 국가가 수립됐다"고 반박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지난 8일 건국절과 관련, "1919년에 건국했다면 왜 독립운동을 했느냐"며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의 3대 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임을 볼 때 상해임시정부는 이 세 요소가 없으며, 상해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면 이후 독립운동은 반역이 아니면 분리운동에 다름 아니다"는 주장을 폈다.
◆"광복절이 옳다."
건국절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헌법 전문을 근거로 들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내용이 전문에 담겨 있다. 제1회 제헌국회에서 의장 이승만은 "오늘 여기서 열리는 국회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13도 대표가 모여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다"고 선언했으며, 국회개원 축사에서 "민국 29년 만에 부활되었기 때문에 민국 연호를 기미년에서 기산하여 '대한민국 30년'에 정부수립이 이루어졌다"고 천명했다.
이런 근거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에서 건국절을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기고를 통해 "저들(건국절로 개정하려는 측)은 친일을 대놓고 미화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정할 경우, 임시정부의 존재가 보잘것없는 '망명정부'로 전락하며, 1910년 8월 29일 국치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38년을 스스로 국권 상실 또 국맥 단절기로 만드는 셈이 된다. 즉 매국노 친일파의 죄상을 대한민국에서 제외시키며,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지난달 15일 '대한민국 건국 89주년 학술회의'에 참가해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는 점에서 '정부수립 60주년'이면 충분하다"며 "절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이 '건국 60주년'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달 2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실효적으로 통치권이 행사되고 있지 않아도 우리나라라고 하듯이 임시정부가 국토와 국민을 실효적으로 지배를 안 했다고 해도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정부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이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지난 8일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국60주년 기념사업회 측에서 '영토와 국민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를 해야 건국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그렇다면 일제가 영토와 국민을 실제로 지배했던 36년간의 시간은 일본국의 역사인가"라고 강력히 반박하기도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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