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8월 19일, 4·19혁명 후 구성된 민의원 본회에서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인 장면 의원을 제2공화국의 초대 국무총리로 인준한다. 그는 민의원 재적 228명 가운데 117명의 찬성표를 얻어 국무총리에 피선됐다. 장면 의원은 하루 전 윤보선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내각책임제하의 제2공화국 국무총리는 정부의 실질적인 권력을 갖게 된다. 집권 후 국민의 자유 보장을 위한 정책들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 이듬해인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총리 취임 9개월 만에 실각하고 만다.
그는 1899년 8월 28일 인천에서 출생, 수원고등농림학교, 미국 맨해튼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동성상업학교 교장일 때 8·15광복을 맞이한다. 1946년 정계에 투신,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특히 1949년 초대 주미대사가 되어 한미국교를 위하여 공헌했으며 6·25전쟁 때는 유엔과 미국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야당의 지도자로서 자유당 독재정권과의 투쟁에 앞장섰으며, 1955년 신익희 등과 민주당을 조직, 1956년 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1966년 6월 4일 별세했다.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발족 ▶1997년 북한, 경수로 착공식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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