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6자회담 깰 수 없다"

한미동맹 강화 다음으로 이명박정부가 강조해온 외교안보 분야 정책과제가 비핵화다. 비핵화는 6자회담이라는 국제적 대화틀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남북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비핵화라는 정책과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6자회담에 외교적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경색도 오래가고 6자회담의 진전도 느리면 북핵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6자회담은 불능화 단계의 막바지에 다달아 심각한 기로에 서 있다. 북미간의 협상에 따라 신고문제와 검증문제가 대강 합의되어 불능화 단계를 지나 '북핵폐기' 단계로 나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암초가 불거졌다. 북한의 신고와 미국의 검증사이에 이견이 생긴 나머지 북한은 불능화조치 중단 선언과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수순을 밟게 되었다. 비핵화프로세스의 시계가 거꾸로 돌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9월 19일에 개성에서 6자회담 경제 에너지 지원 관련 남북 실무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큰 진전이 없었지만 중요한 몇 가지가 확인되었다. 첫째, 북한은 아직도 협상에 임할 태도가 있으며, 특히 6자회담의 지속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조건으로 요구하는 '국제적 기준의 핵 검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셋째, 미국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이 미국의 태도변화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창의적 역할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5년간의 6자회담 역사를 돌아보면, 일정한 진전 다음에 사소한 장애가 나타나 긴 교착상태를 보이곤 했다. 결코 순탄한 과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착이 풀리고 6자프로세스가 새로운 동력을 얻어 지속되어온 데는 한미간의 공조가 작동했고, 미국내 정치지형의 변화가 마침맞게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국면은 그런 변화 요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북미 어느 한쪽이 한 발짝 물러나 절충을 해야 진도가 나가는 데 그럴 정치적 타협의 여지가 서로간에 별로 없다. 대신 상호불신만 잔뜩 높아 있다. 낭패다.

형국이 이렇게 되니까 중국에 역할 주문을 하고 있다. 중국에게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을 할 수단은 없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규범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 제한적 입장 조율의 역할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지금 북한 급변, 계획 5029, 김정일 이후 등등의 문제들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정부와 사회 전반이 그렇다.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가상현실에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미래에 대비해야 하지만 현재를 다루는 것이 일차적 임무다. 오늘을 잘 다루어야 내일에 대한 대비책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정책전환을 통해 급변보다는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마당이다. 한미간의 정책공조가 잘 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3년 전 추석 때의 일이다. 한국은 2005년 '9·19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미국에 네오콘들의 위세가 당당할 때였다. 그때 우리 언론이 보낸 찬사가 아직 생생하다. '9·19합의'에는 비핵화를 비롯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에 관한 포괄적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

이의 이행을 위해서는 6자회담이 지속되어야 한다. 6자회담틀이 붕괴되면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 평화체제의 구축이나 동북아 안보체제 같은 과제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그것은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국익에 크게 어긋나는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정부는 남에게 역할 주문을 하기 전에 이런 사태전개를 막기 위해 정치적 의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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