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유엔해비타트한국위원회(한국위)'란 단체가 2019년 설립됐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변인이 위원장을 맡았고 문 대통령이 '유엔해비타트 최초의 단일국가 기구'라며 축전을 보낼 정도였다. 한국위는 유엔 공식 로고를 내걸어 신한금융·하나금융 등 기업들로부터 기부금 총 44억원을 걷었다. 이랬던 한국위가 사실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승인도 얻지 않고 무단으로 유엔의 이름을 끌어다 써온 것으로 드러나 결국 2023년 11월 해산됐다.
이들의 사기 행각이 드러난 건 내부고발자의 양심 선언 덕이었다. 한국위 간부들은 사기 행각이 서서히 드러나자 이 사건을 밖에 알린 내부 직원을 즉각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에 이 직원은 한국위를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2년6개월에 걸친 처절한 싸움을 거쳐 법원은 최종 내부고발자의 손을 들어줬다.

17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한국위 사무총장이었던 김선아 씨가 2년 전 한국위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 무효 확인 소송에서 김 씨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한국위가 김 씨에게 해임된 때부터 2심 판결이 나온 지난해 7월까지 줬어야 할 급여 3천250만 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 씨는 2022년 당시 한국위 내부의 사기극과 특정 인사들의 유착, 회계운영 부정 등을 국회와 관련 기관에 알려 공론화했다. 한국위는 이에 김 씨를 업무방해·명예훼손·직무태만 등을 이유로 해임했다. 이에 김 씨는 2023년 5월 한국위를 상대로 해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싸움은 쉽지 않았다. 1심 재판부가 "김 씨가 해임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을 각하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전열을 가다듬고 2심으로 사건을 끌고 갔다. 2심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해임 사유로 제시된 임원 간 분쟁, 업무방해, 명예훼손, 직무태만 등은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거나 정당한 문제 제기에 해당한다"며 "김 씨는 내부고발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김 씨가 한국위와 관련해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위가 정당한 사유로 김 씨를 해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 씨는 사무총장으로서의 계약을 중도 해지당한 것이므로 한국위는 계약 만료일까지 지급했어야 할 보수 3천25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2심 판결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며 지난달 27일 이를 확정했다.

이 화려했던 사건의 시작은 2019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위가 설립되자 문 대통령은 이 단체에 보낸 축전에서 "유엔해비타트 최초의 단일국가 기구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며 "출범을 위해 애써주신 박수현 위원장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단체는 이 축전을 유엔해비타트 공식 로고와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내걸었다. 출범식엔 문희상 국회의장, 유은혜 부총리, 송영길·홍영표·박지원 의원 등 야권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였다.
기업들은 이 단체에 줄줄이 돈을 냈다.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사 두나무, 하나은행, 신한금융, 농협은행, 서울주택토지공사, 제네시스비비큐 등이 2020년엔 총 13억9천887만원, 이듬해엔 5억5천348만원, 지난해엔 24억5천155만원을 냈다. 총액은 44억3천91만원이었다.
그런데 2023년 8월 김 씨의 내부 고발로 한국위가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승인을 의미하는 '프로그램 협약'도 없이 공식 대리단체인 것처럼 보이는 명칭과 유엔 로고를 사용해 이와 같은 거액을 모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위는 "10월에 체결될 유엔해비타트 본부와의 MOU엔 일반인 상대 모금 계획도 포함되어 있어 로고와 명칭 사용 관련 내용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위는 본부와 본계약 전 법적 효력 없이 친교 교환 의미로 맺는 MOU조차 체결하지 못했고 2023년 11월 끝내 국회사무처로부터 허가 취소를 당했다. 같은 달 국회사무처 법률자문위원회는 한국위를 고발·수사 의뢰할 것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수사에 나섰다. 착수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국위 관계자는 "오래된 사건이라 따로 입장을 밝히기가 좀 그렇다"고만 했다.
김 씨는 "한국위가 국민의 신뢰에 부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갖춘 조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며 "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한 부당한 기부금 운영과 권력 사유화, 불투명한 인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오직 진실 하나를 위해 싸웠다. 공익을 앞세운 범죄가 있어선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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