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현장.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이 이날 시중에서 구매한 전자여권 판독기를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과정을 시연했다. '여권의 위·변조 방지를 통한 보안성 강화'를 내세운 전자여권의 보안성이 취약함을 실증하는 자리였다. 송의원은 이날 "사진전사식보다 보안이 강화된 것도, 위·변조가 방지된 것도, 출입국심사 절차가 빨라진 것도 아니다. 취약점 보완을 위해 전자여권 발급 여부를 개인선택권으로 허락하고, 지문정보 수록은 완전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의 전제 조건이기도 한 전자여권 발급은 지난 8월 25일 시작됐다. 두 달이 다 된 현 시점에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전자여권 정보가 줄줄 샌다"는 인권단체들과 정부 간의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전자여권, 무엇이 문제일까?
◆인권단체 "불안하다"
송의원이 이날 사용한 전자여권 판독기는 용산에서 20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전자여권을 판독기 위에 올리자 송의원의 여권정보가 화면에 떴다. 지난달 29일에는 전국 41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 연석회의가 서울 중구 명동 천주교인권위 사무실에서 같은 방법으로 전자여권 내의 신상정보를 컴퓨터로 옮기는 것을 시연해보였다. 이들이 사용한 판독기는 인터넷에서 싸게 구입할 수 있는 10만원 가량의 제품이었다. 전자여권을 판독기 위에 올려놓자 수 분 만에 여권 소지자의 ▷이름 ▷사진 ▷주민번호 ▷여권번호 ▷만료일 등이 화면에 떴다. 이들은 이튿날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자여권의 전면 회수를 요구했다.
2010년부터 담기게 되는 지문정보도 문제다. 여권이 분실될 때뿐만 아니라,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도 개인의 생체·신상정보가 고스란히 디지털화돼 위·변조 및 도용의 위험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판독기로 읽어낸 정보에 사진만을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 전문가들은 전자여권 내에 저장내용을 바꾸는 암호까지 들어있는 점을 더 큰 문제로 꼽는다. 이는 마치 신용카드 뒷면에 비밀번호를 써 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전자여권 보안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를 불능화하는 방법도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등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외통부는 "문제없다"
정부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최근 외통부는 '전자여권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 주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따르면 ▷전자여권에는 현존 최고의 보안기술을 적용해 개인정보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고 ▷출입국시 칩에 적용된 인증 기술(PA와 EAC CA)이 자동으로 작용해 위·변조 및 복제 여부를 정확하게 적발하며 ▷외관 훼손 없이 칩만을 고의로 훼손하기 용이하지 않은데다 ▷전자여권에 수록된 지문은 한국정부가 허가한 국가의 판독기에서만 현장에서 판독할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외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자여권이 분실되거나 타인에게 잠시 제공된 '특별한 경우'에만 신원정보면 촬영이나 복사 등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있다.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의 주머니 속에 있는 여권에서 정보를 빼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여행 중 호텔이나 가이드에게 여권을 맡길 경우 위·변조 가능성이 생긴다. 자기 여권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전자여권 문답풀이
-전자여권(e-passport)이란?
비접촉식 전자칩을 내장해 생체인식정보와 신원정보를 저장한 여권을 말한다. 생체인식정보로는 얼굴 사진과 지문(2010년부터 적용), 신원정보로는 기존 여권과 동일한 성명, 여권번호, 생년월일 등이 수록된다. 기존 여권과 마찬가지로 종이 재질의 책자 형태로 제작된다. 앞표지에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표준을 준수하는 전자여권임을 나타내는 로고가 삽입되어 있으며, 뒤표지에는 칩과 안테나가 내장되어 있다.
-이전에 발급받은 여권은 어떻게 하나?
현재 소지 중인 여권은 유효기간까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유효기간이 다 되면 전자여권으로 교환해야 한다. 신규 발급시 비용은 5만5천원으로 전과 같지만 연장시에는 1만원이 오른 2만5천원이다. 여권에 표기돼 있는 외국 비자 역시 유효하다. 이미 미국 비자를 발급받았다면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이후에도 미국 방문시 여권을 굳이 전자여권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전자여권 발급 이후 달라진 여권 제도는?
여권의 보안성 강화라는 도입 취지에 맞춘 것으로 여행사 등을 통한 대리신청은 폐지됐다. 여권 신청인은 본인이 직접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해 직접 발급받아야 한다. 다만, 장애인과 18세 이하의 국민(2010년부터는 12세 이하)은 여전히 대리신청이 가능하다. 정부는 여권 사무를 대행하는 지자체를 일반 구·군청으로까지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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