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말리는 수싸움…국감 현장 '막전막후'

'한건' 하면 스타 탄생

초선인 A의원은 요즘 자신이 국회의원임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 4·9 총선에서 당선했으나 국회가 공전하면서 상임위 활동 등을 포함한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6일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장관은 물론 피감기관장과 간부들이 문이 닳도록 의원회관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서 국회의원이 됐음을 느끼고 있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이 사법부와 행정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깰(?)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자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무대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에게 최고의 대목장이다.

◆국정감사장 백태

국감에서 의원들의 얼굴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지난 7일 오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회의실. 한나라당 대변인 재직시 미모에 깔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기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나경원 의원이 투사로 변신했다. 민주당 측이 YTN 사태에 대한 국회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하면서 거칠게 나서자, 고흥길 상임위원장을 대신해 "조용히 하세요. 의사진행 발언은 이따 하세요"라며 까칠하게 맞섰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삿대질을 하면서 고성을 내지르는 험악한 상황에서도 나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중진 의원들은 주로 무게를 잡는데 치중한다. 홍사덕 의원은 6선 관록이 이런 것이다라는 듯 미소 띤 얼굴로 다른 의원들의 질의를 듣는 여유로운 모습을 주로 보이고 있다.

엄청나게 분주한 모습도 있다. 한나라당 국감상황실장인 주호영 의원은 직책상 당의 전체 국감진행 상황을 체크하랴, 자기의 국감도 챙기랴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다른 국감장 소식 등을 알리는 쪽지를 보좌관으로부터 전해받고 곧바로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어떤 공격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할지를 놓고 의원과 피감기관 사이에 피를 말리는 수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8일 한국수출보험공사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대한 지식경제위 국감이 진행되는 지경위 회의실. 지식경제부 산하의 두 기관장은 국회의원들이 어떤 질의를 할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한 듯 느긋하게 증인석에 앉아서 질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의원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질의를 하자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참모들의 도움으로 답변을 무사히 마쳤지만 등골이 서늘했다는 반응이었다.

의원들 간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한 기관을 대상으로 여러 의원들이 질의를 하다 보면 질의내용이 중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질의 순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한 건' 할 것으로 기대됐던 질의를 앞 순서의 다른 의원에게 선점당했을 때 그야말로 김이 샌다. 이럴 때는 보좌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눈치 빠른 보좌진들은 다른 의원의 질의서를 사전에 입수, 상임위 간사를 통해 질의순서를 앞당기도록 막후에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좌관, 우리도 바빠요

국감철이 다가오면 국회의원 보좌진이 가장 바쁘게 움직인다. 통상 9월 중순에 국감이 시작되기 때문에 보좌진들은 여름휴가가 끝나면 곧바로 각 부처를 상대로 자료를 요구하는 등 국감 준비에 돌입한다. 올해는 원 구성 협상이 늦어지면서 상임위 배정도 늦어 9월 초에서야 본격적인 국감 준비에 나설 수 있었다.

국감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피감기관과의 샅바싸움이 시작된다. 보좌진들은 우선 피감기관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요구한다. 반면 피감기관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갖 방어막들을 겹겹이 친다. 양측의 신경전은 자료 제출을 둘러싸고 최고조에 달한다. 보좌진들은 피감기관들의 약점을 찾기 위해 포괄적인 자료를 요구하고 피감기관은 방어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성질 급한 보좌진들은 '욕설'까지 서슴지 않는다.

9년째 국감을 준비한 김태한 보좌관(김태환 의원실)은 "자료를 요구하면서 피감기관과 싸우고 어르고를 수십번 반복한다"며 "공무원들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고급 자료를 얻을 수 있는가가 국감 성패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보좌진들은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면 가공(?)에 들어간다. 소위 '한 건'을 터뜨리기 위한 전초 작업이다. 외부 전문가까지 초빙해 피감기관들의 문제점을 탐구한다. 관련 공무원들을 불러 보충 설명도 듣는다. 이 과정이 보좌진들에게 가장 힘들다.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회의를 거듭하고, 의원과도 의견을 교환한다. 보도자료가 만들어져 언론에 배포되면 이들의 역할도 마무리된다.

손강호 보좌관(이명규 의원실)은 "아무래도 모시는 의원이 언론을 타면 가장 기분이 좋고 고생했던 것을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성조 의원실의 강동준 보좌관은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임플란트를 했던 이가 빠졌다.

◆국감장 밖 풍경

국감장 밖에 마련된 휴게실은 피감기관 직원들이 점령했다. 어떤 휴게실은 아예 간이침대까지 마련된 숙소로 변했다. 국감장 안을 중계하는 CCTV가 설치돼 있고, 각 부처와 직접 연결되는 컴퓨터와 프린터까지 있어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각종 자료나 기관장의 답변에 필요한 자료를 즉석에서 뽑아 활용할 수 있다.

피감기관 일반직원들은 국감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에서 꼼짝 못하고 대기해야 한다. 상당수가 전날 날밤을 새고 온 탓에 핏발선 눈에 얼굴에는 피곤함이 뚝뚝 묻어나온다. 어떤 직원들은 고단함을 못 이겨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드러눕기도 한다.

기획재정부의 한 직원은 "국감기간에는 거의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2, 3시간에 불과하고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장차관이 답변에 실수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피감기관은 20일 국감에 앞서 벌써부터 직원 3명을 국회로 보내 소속 상임위원들의 질의 내용을 탐색 중이다. 7일 서울에 온 즉시 국회 인근에 숙소를 마련했다는 한 직원은 "예상 질문을 미리 빼내고 지역과 관련된 동향을 보고하는 것이 임무인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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