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락(50) 국무총리실 정무기획비서관은 '정세분석의 달인', 혹은 '페이퍼웍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3대 정권을 거치는 12년 동안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지켰다. 참여정부에서는 운동권 출신 386들에 밀려 청와대를 나와 삼성경제연구소와 여의도연구소를 거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그는 다시 국무총리실 정무기획수석실로 갔다. 정권이 두번이나 바뀌는데도 정치의 한복판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정치현상과 흐름을 중립적으로 보는 시각과 기획력 때문이었다. 그는 정국을 보는 동물적인 감각과 이를 보고서로 엮어내는 탁월한 능력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이 그를 정권을 넘나드는 정무기획의 달인으로 살아있게 만든 밑바탕이다. 그가 욕심을 내서 스스로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했다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 공채 7기로 정당생활을 시작한 정당인이었다. 그가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것은 법대생들이 어쩔 수 없이 겪는 고시 도전과 낙방이라는 과정의 결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몇차례 고시에 떨어진 그는 30세에 이르러 민정당 사무처요원 공채에 응시하게 됐다. 그의 공채동기가 강현석 경기도 고양시장과 김형렬 대구 수성구청장 등이다.
정치권에서 일하게 되자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천부적인 정치적 감각을 발휘한 모양이다. 지난 1989년 청와대 정무수석실로 스카우트된 그는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도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떠나지 않았다. 1997년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는 그의 신분에도 큰 변화를 줄 뻔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 출범 후 사표를 내고 당으로 복귀하려고 했지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한나라당에 그가 돌아갈 자리는 없었다.
그때 다시 청와대에서 러브콜이 왔다. '적군'이었지만 일할 사람이 필요한 당시 문희상 정무수석이 그를 원래 자리로 부른 것이다.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는 정치현장으로 돌아갔다. 쉽게 얘기하면 그는 정치적 현안이 발생하면 한발 떨어져서 냉철하게 분석하고 제대로 된 전망을 내놓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분석 노하우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2, 3시간씩 신문과 주간지 등을 꼼꼼히 읽고 정치 분야 외에도 정국 풍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은 세심하게 분석하면서 거시적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총리실로 자리를 옮긴 후 그의 업무는 주로 국회와 관련된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및 국회 예산결산 ▷현안 발생시 총리의 정치적 행보 제시 등이 자신이 하고 있는 구체적인 정무적 기능이라고 밝혔다.
그가 지금껏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여기는 일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당시 '정치관계법'을 청와대 주도로 통과시킬 때 밑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당시 그는 법제처와 중앙선관위 공무원 등과 함께 팀을 꾸려 김 전 대통령이 원하는 정치개혁 드라이브에 날개를 다는 역할을 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위한 정무기획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VIP(대통령을 따로 이르는 말)'의 정치만 기획해왔다면 앞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나이가 된 것이다. 그는 "정작 나를 위한 정치는 한번도 할 생각을 못한 것이 정치분석가로서 장수한 비결이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경북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온 그는 이미 3명의 전·현 국회의원 친구가 있다. 이른바 경북고 동기 3인방인 유승민·주성영 의원, 권오을 전 의원 등으로 이들과는 수시로 만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김병일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그의 친형이다.
의성이 고향인 그는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사실이 실제 직장생활에 큰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언제나 정을 나누고 맘을 터놓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자랑스러운 것이 고향이었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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