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루 33명꼴 자살…더 이상 미룰수 없는 사회적 숙제

세상과 이별 극단선택 급증, 막을 방법 없나?

▲자살은 개인 문제여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살은
▲자살은 개인 문제여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살은 '공동 책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국가와 사회, 개인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 사진은 고 최진실 장례식 사진. (연합뉴스)

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세상과 이별하고 있다. 불가피한 질병이나 사고 때문이 아니라서 더욱 가슴 아프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자살을 '개인' 문제로 치부, 방치해선 안 된다. 공인이나 연예인들의 자살은 더욱 치명적이다. '베르테르 효과' 때문이다. 충격과 정신적 공허함, 허탈·상실감이 일반인 자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지난해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물론 자살은 '질병'이 아니다. 그러나 이젠 '공동 책임', 하나의 '질병'으로 보고,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극단적 선택, 얼마나 많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모두 1만2천174명으로, 하루평균 33.3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번째다. 지난해보다 한 단계 상승했다. 자살 증가율도 세계 최고다.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률은 24.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전 13명에 비해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10명을 밑돌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가파르게 상승하다 2003년 20명을 넘어 고 자살국가에 이름을 올렸고, 지금은 30명 선도 위협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보다도 1.7배나 높다.

◆자살, 왜 선택하나

자살을 선택하는 원인으로는 우울증, 위기해결 능력 부재, 외로움, 음주 등이 있다. 이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우울증이다.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의욕 상실,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주된 증상인 우울증은 전체 자살 기도자의 60% 이상이 경험한다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더 큰 문제는 현대인 상당수가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것으로, 인류의 30~80%가 평생에 한 번 정도는 우울증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위기해결 능력 부재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인생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불행한 순간,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는 기술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위기 대응이나 극복 능력을 위한 교육이 없다 보니 위기 해결 능력과 기술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신체·정신적 강인함도 필요하지만 유머나 대화 능력, 스스로 도움을 구하는 등의 유연함도 필요하다. 또 하나는 외로움으로, 특히 노인들에게 해당된다. 실제 80대 이상 남성의 자살률은 전체 자살률의 10배에 이르는데, 외로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인 노인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부장 제도에서 급격하게 핵가족화됐지만 여성과 달리 자녀와의 친밀감이 없는데다 권위도 떨어져 친하지도, 대접받지도 못하는 상황을 이겨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막아야 하나

무엇보다 '남 이야기' 좋아하고 헐뜯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문화부터 근절시켜야 한다.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서로 간의 외모나 성격 등에 대한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여과 없이 쏟아지다 보니 일반인, 특히 어린아이들까지 알게 모르게 물들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독설과 욕설, 무책임한 글로 인한 피해도 이만저만 아니다. 노년 자살을 막기 위해선 자녀와의 관계 회복이 중요하다. 자녀와 친하게 지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이 필요할 때 부모가 그 자리에 없으면 부모들이 필요할 때 자녀가 그 자리에 없다. 주변인의 자살 징후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살에 대한 잘못된 상식 중 하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80% 정도는 자살 전에 암묵적이든 구체적이든 자살을 암시한다고 한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 연구팀이 2004년 자살자 1만1천52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중 3명 중 1명 정도는 자살하기 전 1년 내에 정신과적 문제로 의료기관을 찾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누군가 자살 의도를 나타낸다면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사망의 주요 원인인 암,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해선 정부와 지자체, 의료계가 모두 나서 예방과 검사, 치료를 적극 홍보하는 것은 물론 예산을 들여 전문 센터나 사업까지 시행하며 질환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살도 이제 이러한 질병과 같이 접근, 예방할 수 있는 국가적 대책과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자살 예방 홍보와 교육, 우울증 등 관련 질병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신보건 관련 인적 인프라 확보와 우울증 등 자살 원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지역별 전문센터 운영, 자살 예방 위한 학생 교과 과정 개설 등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신과 진료 및 상담의 문턱을 더욱 낮춰 힘들 땐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 정신과에서 진료나 상담을 받으면 마치 덫에 걸려드는 것처럼 불이익을 당하고 취업이나 외국 여행도 못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어 치료를 방해하고 있다. 우울증을 더 이상 정신병으로 몰지 않는, 당뇨병 환자와 같은 환자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선 사회적 관심과 담론화가 필요하고 보건복지가족부뿐 아니라 관련 모든 부처를 포함하는 포괄적·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및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 정신보건전문요원를 비롯해 일반 사회복지사, 교사, 교정기관, 구·군 등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 관련 교육 과정도 내년부터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도움말·서완석 영남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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