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준비 안 된 대구경북'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번영기를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숱한 名言(명언)을 남겼다. '단 한 권의 책밖에 읽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라' '가장 과묵한 아내는 가장 사나운 아내를 만든다' 등이 그로부터 비롯돼 오랜 세월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됐다.

그는 準備(준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밀은 다가올 시간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다"가 그것이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을 얘기한 이순신 장군이나 링컨 대통령 등 세계의 지도자들도 준비를 강조했다. 특히 미국의 존경받는 여성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는 "행운이란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것이다"라고 멋스럽게 말했다.

지금 삶이 고단하고 주변 환경이 척박할지라도 자기 실력을 착실히 쌓으면서 미래를 준비하면 분명 성공의 기회는 오리라.

그런데 대구경북 출향 인사들 사이에서 '대구경북은 아직 준비가 안 된 듯하다'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지역이 너무도 어렵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15년의 疏外(소외)를 털고 발전할 기회가 왔는데도 지역을 발전시킬 준비가 안 됐다는 취지다.

오래전에 출향해 대구경북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인사들이 그런다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문제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대구경북 공직계에서 활동했던 고위인사들의 입에서 나온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박정희에서 노태우 시대로 이어진 30년간 우리는 지역 발전에 대한 긴 안목을 갖고 있지 않았다. 권력자는 넘쳤으나 개인의 榮達(영달)에는 눈 밝아도 지역의 비전에는 봉사인 실력자들뿐이었다. 그들은 出世(출세) 경쟁자인 고향 사람끼리 서로 헐뜯고 싸웠다.

그 결과가 대구의 1인당 지역총생산(GRDP) 14년째 꼴찌란 치욕이다. GRDP와 주민 삶의 질을 등치시킬 수 없다는 식의 분석은 그럴듯해 보여도 공허한 自慰(자위)다.

15년 소외는 지독했다. 손에 꼽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밀라노프로젝트와 방폐장 유치로 얻은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정도다. 영일만 신항은 20년째 '공사 중' 이다. 동해안 7번국도도 역시 20년째 '공사 중' 이다. 경주의 '문화'는 광주에, 태권도는 '무주'에 잃었다. 대구의 '빛'은 광주에 넘겼다.

출향한 공직자들도 소외에 몸서리쳤다. 승진과 주요 보직 인사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 사람과 만나는 것을 피했고, 심지어 고향을 숨겼다.

戊子年(무자년) 10월. 세상은 분명 바뀌었다. 대구의 숙원이던 국가산업단지가 내년이면 착공한다. 포항과 구미 국가산단도 내년 착공이다. 동남권신공항도 청도 옆인 경남 밀양에 들어설 분위기다.

청와대는 물론 국정원 검찰 국세청 경찰 등 4대 권력기관에 대구경북 인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요직에도 대구경북 인사들이 몇몇 발탁됐다. 한 기관에서는 대구경북 인사들이 중용되자 내부 반발이 잠시 일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대구경북 출신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별 인력 현황을 들이밀자 잠잠해졌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런 순풍에 돛단 시절에 대구경북에서는 불유쾌한 소리가 요란하다. '친이-친박'을 잣대로 편 가르기 하는 나쁜 행태는 차치하고 '특정 고교가 대구를 말아먹는다' '특정 인사가 단체장이 되려 한나라당 인사를 전횡했다' 등등의 얘기들이다. 집안 싸움 꼴로 30년 그 세월 때와 꼭 닮았다. 요직에 발탁된 일부 인사가 자기 잘나서 출세한 줄 알고 지역과 후진을 키우는 데 손을 오그리는 行態(행태)도 그 세월과 닮았다.

시절은 좋고 할 일은 많은데 15년 소외된 대구경북은 새장 속 작은 새일까? 15년 馴致(순치)된 대구경북 인사들은 떨어지는 낙엽에 소스라치는 가을 귀뚜라미일까?

내일 누군가 대구경북을 비판한다면 '이제 대구경북은 지역 회생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바깥으로 마음이 열렸고, 미래를 향한 비전이 있고, 무엇보다 15년 소외를 훌훌 털어 버릴 특유의 여유와 아량을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자랑하고 싶다.

최재왕 서울정치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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