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높아지는 영장기각률…한숨짓는 공권력

이달초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길가던 여성에게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A경관. 지구대로 붙잡혀와서도 책상 집기를 던지는 등 욕설과 난동이 계속되자, 이 남성에게 5만원짜리 경범 스티커에 서명을 하라고 내밀었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두차례나 얻어맞았다. 폭력전과까지 있던 이 남성은 현행범으로 체포돼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뜻밖에도 영장은 기각됐다. 증거 인멸·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A경관은 "그 소식을 듣고 취객을 상대하기가 꺼려진다. 나만 손해 아니냐"고 한숨을 쉬었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5년 12.9%이던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률은 2006년 16.4%, 2007년 21.8%, 2008년 6월 현재 24.1%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대구지법의 경우도 2006년 9월~2007년 8월 17.8%이던 기각률은 2007년 9월~2008년 8월 22.6%로 늘어났다. 이중 공무집행방해범과 성인오락실 사범의 영장 기각률이 유독 높아 공권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검경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구지법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공무집행방해범에 대한 구속영장은 66건이 청구됐지만 이중 30건(45.5%)이 기각됐다. 비슷한 기간 대구지법 평균 영장 기각률 22.6%보다 2배 넘게 높다. 한 경찰간부는 "공판중심주의가 되면서 법원이 영장발부에 더욱 신중해진 것으로 이해하지만, 현장에선 정말 맥이 빠진다"고 털어놨다.

성인오락실 사범도 비슷한 상황이다. 바다이야기 등 불법 사행성오락실 운영·불법 환전 등으로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대구지법에 청구된 구속영장은 52건이었고 이중 15건(28.9%)이 기각됐다. 10명중 3명이 풀려났다. 대구 한 경찰서는 지난달 초 바다이야기 게임기 35대를 설치해놓고 영업한 J(44)씨를 현장에서 급습해 붙잡았지만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단속 경찰관은 "도박장 앞에 단속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해놓고 비밀리에 영업했고, 재영업을 할 우려가 컸지만 '도망갈 염려가 없고 주거가 일정하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다"며 허탈해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구속이 남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은 이해한다"면서도 "불구속 재판하에서 달아난 피고인을 붙잡기 위해 또 다시 헛심을 써야 하고, 피고인의 출석이 보장되지 않아 재판이 공전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반면 법원에서는 기각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치안력이 흔들린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법관은 "공판중심주의하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도 중시된다"며 "영장 발부나 기각은 개별사안에 따라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경이 공무집행방해 행위에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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