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味의 산실 대구]대구의 레스토랑 변신

6.25라는 대변란이 있었던 1950년대를 제외하고 1960년대 이후 대구의 레스토랑 변천사에서는 ▷호텔 내 부대시설인 양식레스토랑 ▷수도그릴 등 제법 양식의 틀을 갖추고 영업을 한 그릴(여기서 Grill이란 고기 등을 '굽다'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외국에서 식당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경양식을 취급하는 일반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밖에도 대구 주둔 미군부대 내 레스토랑(특별한 사람만 이용)이 있었다. 이곳은 대중적이지는 못했지만 정통 서양식의 맛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세 갈래의 양식 레스토랑 중에서 호텔의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1968년 수성관광호텔에서 양식 조리사로 입문했기에 60년대 대구의 호텔 레스토랑의 현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지금은 인터불고호텔 등 어느 지방에 비해서도 손색 없는 수준 높고 품격 있는 호텔이 있지만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는 호텔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관광호텔레스토랑 역시 지금에 비하면 시설'음식'서비스 등의 수준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대구의 대표적인 호텔은 수성관광호텔과 금호호텔,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한일호텔 등이었고 이외 소규모 호텔도 다수 있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호텔은 수성관광호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꼭 묵었던 곳이다. 수성호텔이 산으로 둘러 싸여서 경호부분에 장점이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대통령의 전용객실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구에서 객실과 레스토랑의 수준이 그나마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대통령이 투숙하면 숙박과 함께 반드시 식사제공 및 공식만찬을 열었는데 대통령경호실 및 검식관 등의 요구로 수준 높고 질 좋은 음식을 제공 할 수밖에 없었으며, 행사를 자주 치르다 보니 자연히 수성관광호텔 레스토랑 음식의 질이 타 호텔에 비해 높아질 수 있었던 것.

당시는 호텔 이용객은 외국인이나 특수층, 그리고 재력가 등이 대부분이었고 일반 대중들이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높던 시기였다. 지금은 전통과 정통을 자랑하는 많은 일반레스토랑이 성업 중이지만 그 당시는 그나마 제대로 된 서양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고급식당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호텔 레스토랑도 서비스 및 조리교육기관의 부족과 식품유통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해 수준 높은 서비스와 정통적인 음식은 제공하진 못했다. 특히 조리교육은 선배들의 어깨너머 교육이 대부분이어서 체계적이고 정통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고 서양식의 경우 많은 식재료를 수입재료에 의존, 재료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같은 서양식이라도 레스토랑마다 음식의 맛과 내용이 달랐다.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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