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모델하우스 有感(유감)

최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마린시티에 개관한 어떤 유명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해체주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했다고 해서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파트 자체가 아닌 그것의 모델하우스가 독특한 디자인의 초현대식 건축물로 지어진 것이다. 모델하우스란 본래 願買者(원매자)들에게 보이기 위해 미리 지어놓는 견본용 주택을 의미하는데도 말이다. 하긴 요즘에는 건설업체에 따라서는 모델하우스를 단순한 주택전시 목적이 아니라 아예 복합문화공간으로 상설화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곳은 문화강좌, 그림전시, 음악회 등이 수시로 열리는 기획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델하우스의 이러한 변신은 결코 우연하거나 우발적인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문화의 특유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정착한 모델하우스는 그동안 비상한 방식으로 이미 과잉 발전해 왔다. 사실상 모델하우스를 통한 아파트 분양 촉진은 외국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집이 지어지기 전에 판매되는 우리나라 아파트 분양제도의 특성에 따라 주택 내부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모델하우스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설령 모델하우스가 있더라도 대개 실용적인 차원에서 기본 평면구성이나 자재샘플 정도를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들이 많다. 고급아파트의 경우에는 몇 십억에서 몇 백억 원이 들어간 초호화판도 많다는 소문이다. 이유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파트를 구매하는데 있어서 모델하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의 눈을 끌기 위해 모델하우스는 가구나 인테리어 등 모든 측면에 있어서 '별천지'처럼 보이도록 꾸며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모델하우스에서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상술이 적잖이 횡행하기도 한다. 예컨대 전시용으로 비치된 침대나 소파는 실제보다 폭이나 길이가 짧을 때가 많은데, 그것은 방을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기 위해서다. 천장 역시 실제보다 높게 만드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델하우스에 있는 모든 소품은 힘든 가사노동을 연상시키지 않도록 배치되어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모델하우스에서 주부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는 곰국 냄비나 김치 항아리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모델하우스에서는 흔히 신발을 벗고 납작한 실내화로 갈아 신은 채 키가 큰 이른바 '분양도우미'의 안내를 받는데, 이것 또한 공간심리학을 절묘하게 이용한 결과다. 신발을 낮게 신으면 상대적으로 천장이 높게 보이며, 키 큰 도우미 앞에서 위축이 되면 모델하우스가 실제보다 넓어 보이기 때문이다. 분양도우미는 나날이 '귀하신 몸' 되어 최근에는 일당 15만원을 받을 정도로 '몸값이 금값'이라는 말도 나도는 실정이다.

현재와 같은 형태와 기능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대해 마음이 자꾸만 씁쓸해지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모델하우스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인식 지평을 집안 내부에 가둠으로써 주택관념의 내향화를 초래하기 쉽다. 이웃관계나 동네 분위기 등 주택의 외부환경을 배려하기보다는 아파트 내부공간만 집중하게 될 때 개인중심 혹은 가족위주 생활양식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주민공동체나 지역사회를 약화시킬 개연성을 높인다.

둘째로는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과시와 허영으로 충만한 오늘날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는 어디까지나 시한부 전시시설로서 실제 아파트가 완공될 때 똑같은 구조인지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소임이 충분한 것이다. 진짜 아파트보다 더 나은 가짜 모델하우스의 유행과 범람은 마치 '거품공화국' 대한민국의 길거리 상징인가 싶어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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