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왕 기자의 인물산책]최재덕 대한주택공사 사장

지난 7월 "서민들이 주택을 쉽게 마련하도록 주택 가격을 낮추는 데 주력하겠다"를 취임 일성(一聲)으로 밝힌 최재덕(60)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최 사장의 생각은 이랬다. 주택은 의, 식, 의료, 교육과 함께 국민 생활의 5대 기본 요소지만 국가가 모두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득수준 하위 20%는 임대주택에 살 수 있도록 임대료를 낮추고, 중간 정도 소득수준의 서민들은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국가가 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은 전세를 살고, 40%는 내 집이 없습니다.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시중가의 30%에 공급하는 등 소득 최하위 계층을 위한 방안이 필요합니다. 주택공사가 매년 13만호 정도의 서민용 주택을 공급하는데 전체 45만호 중 13만호이니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건설업체 지원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건설업이 잘 안 돌아가면 서민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단순 노무자는 더더욱 어렵죠. 건설업체 지원은 결국 서민 지원이 되는 셈입니다. 주택공사도 2천500호를 구입했고, 추가로 2천500호를 더 구입하기 위해 가격을 협상 중입니다. 미분양아파트가 16만호에 이르는데 모두 다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주택공사의 지원이 급한 불을 끄는 정도는 됩니다. 펌프에 물 한 바가지 붓는 겁니다."

대구 토박이인 최 사장은 경북고를 다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퇴,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했다. 선산이 지금의 경북대 자리에 있었는데 수용됐다 한다.

그는 2004년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날 때까지 30년을 국토해양부에서 일했다. 건설부에서 건교부, 국토해양부로 부처 이름만 바뀌었다. "의식주 가운데 주(住)의 해결이 가장 어렵습니다. 국민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뜻이 있을 것 같아 건설부를 지원했습니다. 공직에 들어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저는 행운아죠."

최 사장이 공직을 떠나 백수로 지낸 세월은 꼬박 3년. 강원도 속초시 근처 설악산 자락에 작은 집을 월세로 얻어 1년여간 책 읽으며 소일하다가 지난해 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불려왔다. "역사 철학 문학 등 평소 보기 힘든 책을 실컷 읽었어요. 책을 보면 제 스스로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놀면 집사람은 싫어하지만 저는 10년, 20년 놀 자신이 있더라고요." 이때 최 사장은 주민들로부터 교수로 불렸다. 교수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그가 어려운 책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그를 교수로 믿었다.

인수위 경험은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국정과제, 국책과제를 폭넓게 다루면서 새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일어나서 잘 때까지 늘 국토해양부가 만든 공간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국민이 국토해양부를 통해 정부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으므로 (국토해양부가) 잘했다는 평가를 듣기는 참 힘듭니다."

국토해양부 장관 하마평에서 빠지지 않았던 최 사장이 국정지지도가 낮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어느 정부나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이뤘고, 산업화의 그늘로 생긴 소외계층을 치유하기 위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좌쪽으로 기울었죠. 성장과 효율, 분배와 평등이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나눠먹을 게 없어졌으니 이젠 성장과 효율 쪽으로 가야 할 시대가 된 거죠. 분배와 평등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동의하지 못해 촛불집회가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현 정부가 다소 반대가 있어도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쪽으로 가닥 잡은 것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백발이 성성하고 꼿꼿한 선비 이미지를 가진 최 사장에게 공직자관(觀)을 물었다. "공직자는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입니다. 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바르고 곧게 살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지인(知人)이 선물한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제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은 발자국 훗날 따르는 이들의 이정표 되리니'란 서산 대사의 글과 함께.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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