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육남매의 어린시절엔 언제나

얼마 전, 냉장고를 정리하다 언제 넣어두었는지 몰랐던 사과 한 봉지가 있었다.

다섯 개 중 2개는 썩어 있었다. 건망증. 우리 어릴 적에는 이런 사과도 없어서 못 먹었었는데 혼자 중얼거리다 잠시 옛날 생각에 젖어본다.

우리 집은 대구에서도 변두리에 살았다. 여름 방학이면 동네친구들과 한 시간 정도 걸어서, 무태까지 물놀이하러 다녔다. 중간쯤에 오다 보면 과수원이 몇 군데 있다. 방학 끝 무렵이면 채 익지 않은 국광(사과)이 많이 떨어진다. 어느 날인가 지나치다 보니 아주머님들께서 자루에 사과를 잔뜩 담아 이고 가시는 걸 보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저런 건 맛도 없고 먹지도 못할텐데 생각하고 뒤따라가 여쭈어보았다. 하시는 말씀이 "흠 있는 데는 잘라내고 사카린, 소금 조금 넣고 푹 삶으면 정말 맛있데이" 하신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졸랐다. 길도 멀고 힘든 데 안 된다고 하시는 걸 우겨서 30원을 가지고 5세짜리 막내 동생을 데리고 신나게 출발했다.

조금 걷더니 "누부야 업어"하고 매달린다. 업고 걷고 그러다 과수원에 도착해 용기를 내어 30원을 내밀자 과수원 주인은 자루를 하나 주며 반쯤 담아가라고 하셨다.

10㎏정도는 되는 사과를 머리에 이고 오면서 어머니께서 말리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생은 업자고 보채고 사과자루는 무겁기만 하고 어휴!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다. 집에 와서 깨끗이 씻어 푹 삶아 놓으니, 우리 육남매 양푼이 바닥이 닳도록 서로 많이 먹으려 경쟁을 할 만큼 맛나게 먹었다.

며칠 후 동생들이 사과 먹고 싶다고 하면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서도 여러 번 그러고 다녔으니 언니랑, 나보다 네 명의 동생들이 맛나게 먹는 걸 보고 아마도 그 힘든 걸 잊곤 했나보다. 지금도 사과잼을 보면 우리가 해 먹던 것이 원조 사과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종희(대구 남구 대명 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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