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그 속에 던져진다면…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운가?

지구라는 별을 지배하는 상위 포식자로서 문명을 일구고, 타 포유류를 동물로 자신은 인간으로 분류하면서 독보적인 존재를 형성한 것이 대단한 것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 이런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어느 동물보다 진실하지도 않고, 사악하며 교활하고 나약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절절하게 확인하게 된다.

뉴욕 시내의 한복판. 갑자기 차가 멈춰 선다. 차 주인은 눈앞이 하얗게 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서 안과 의사(마크 러팔로)에게 진찰을 받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러나 '실명 바이러스'는 모든 사람에게 전염된다. 그의 아내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이 먼다.

정부는 감염자들을 수용소에 감금한다. 의사 아내(줄리안 무어)는 눈이 멀지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수용소에 들어간다. 수용소는 또 하나의 왕국이다. 차츰 서열이 만들어지고, 권력도 생긴다. 제3병동의 남자는 무력으로 사람들을 제압하며 식료품을 무기로 금품을 갈취하고, 여자를 상납하라고 요구한다.

실명은 인간이 가진 여러 감각 중 하나를 잃는 것이다. 실제 눈먼 자들도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이 집단화되면서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세운 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피부색도 빈부도 지식도 그 어떤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원시로 돌아간다. 아주 쉽게 동물의 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1995년 발표된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가상의 세계를 툭 던져놓고 인간이란, 또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묻는다.

눈이 멀고, 병동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 줄거리다. 도대체 왜 눈이 멀고, 왜 여자 주인공은 그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고, 정부는 왜 그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비인간적으로 대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환상적 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사라마구 소설의 분류처럼 가상을 던져놓고, 현실을 묻는다.

거친 화면에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격한 음향, 눈이 멀어가는 사람들의 시선 등이 멀쩡한 관객도 눈이 멀어 가는 듯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간혹 암전도 배치해 베르히트의 연극처럼 스크린을 현실로 옮겨오려 애쓴다.

'시티 오브 갓'(2002) '콘스탄트 가드너'(2005)로 뛰어난 연출력을 과시했던 멕시코 출신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감독한 이 영화는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개봉 전부터 화제를 낳았다. 원작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영화를 보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특히 수용소의 설정은 가상과 우화를 넘어 끔찍한 느낌을 준다. 아무 데서나 배변하고, 섹스하는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오로지 먹고, 싸고, 또 섹스하는 동물적이고 1차원적인 욕구에만 매달린다. 그 속에 인간의 존엄성은 실종되고, 가치도 상실된다.

한계 상황에서도 왕국이 탄생하고, 폭압과 피학의 서열이 생기는 것이 인간 본성의 극단을 보는 듯하다.

영화 후반부 '실명 바이러스'로 도시가 폐허로 변한 모습은 압권이다. 단시간에 문명이 붕괴되는 상황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성찰이 없다면 영화는 일반적인 좀비영화와 흡사하게 전개된다.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는 극단적이 장면이 없으니, 긴장감도 떨어진다. 원작이 가진 상징도 영상으로 재현되면서 많이 희석된 느낌이다.

내가 눈이 멀어, 눈먼 자들의 도시에 홀로 남겨진다면이란 가정을 상정하는 것이 입장료 아깝지 않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18세 관람가. 120분.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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