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미인도 유감

미국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1960~1988)는 '검은 피카소'로 불리던 화가다.

그는 뉴욕의 거리를 전전하며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낙서꾼이었다. 뉴욕 현대미술관 앞에 앉아 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그렸고, 담배 종이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앤디 워홀의 눈에 띄어 천재화가로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화가 출신 영화감독 줄리앙 슈나벨의 영화 '바스키아'는 꿈에 그리던 화가가 됐지만, 피부색과 사람들의 질시를 못 이기고 마약에 찌들어가는 바스키아의 삶을 화려한 그림과 함께 감각적으로 그렸다.

화가들의 삶을 그린 영화들은 늘 드라마틱하다.

1930년대 '렘브란트'를 시작으로 많은 화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영화가 많은 편이다.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를 시작으로 2005년 폴 몰린 감독의 '반 고흐'까지 1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됐다.

'위험한 관계' '토털 이클립스' 등의 시나리오를 쓴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의 '캐링턴'은 영국의 여류화가 레오노라 캐링턴의 삶을 그렸고,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서바이빙 피카소'는 파블로 피카소와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의 10년에 걸친 관계를 담고 있다.

'사랑은 악마'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그의 동성연인 겸 모델로 7년간 격정적인 관계를 지속하다 1971년 자살한 조지 다이어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외 이자벨 아자니가 로뎅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 역을 맡은 프랑스영화 '카미유 클로델'과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프리다' 등도 인상적인 화가 영화였다.

이들 영화들은 모두 예술에 대한 고뇌와 현실 사이의 괴리, 천재적인 창작혼 등이 어느 전기 영화보다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미인도'를 보면서 아쉬운 것이 영화 속에 신윤복의 예술혼이 실종된 것이다. 천재화가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드라마틱한 소재를 남장 여류화가의 속물적 노출로만 그려냈다.

신윤복의 그림은 파격적이었다. 개가 서로 교접하는 모습을 보며 희롱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이부탐춘'이나, 깊은 밤 남녀의 밀회를 엿보는 '월야밀회',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있는 여인들을 그린 '단오풍정' 등은 춘화(春畵)의 한계를 뛰어넘는 색다른 시도였고, 시선이었다. 그가 왜 격(格)을 부수고, 점잖은 양반사회에 대항했을까라는 물음은 곧 신윤복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다.

인물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는 치열한 '사람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미인도'는 온갖 사랑을 늘어놓으면서 정작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는 영화다. 한국영화의 한계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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