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변호사회가 판사들의 업무 수행을 변호사들이 평가하는 '법관 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느 판사의 재판이 너무 문제가 많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민사 소송 사건의 재판을 주재하면서, 그 판사는 피고 측에 기운 태도를 줄곧 드러냈고 재판 절차까지 어겼다. 피고 측 변호사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는 얘기도 나왔다. 원고 측 변호사는 서울변호사회에 진정했고, 그 단체의 회장은 법원장을 방문해서 진정서를 전달했다. 법원장도 진정이 타당하다고 판단해서 그 판사에게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넘기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 판사는 그런 권유를 거절하고 끝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놀랍게도, 판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변호사들이 판사들을 평가할 만한 도덕적 권위를 지녔느냐는 냉소적 반응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반응은 조리에 닿지 않는다. 판사들은 재판이라는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무원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평가는 그들의 서비스를 사는 소비자들인 시민들이 하는 것이 당연하고, 실제로는 시민들을 대리하는 전문가들인 변호사들이 하게 된다.
'법관 평가제'는 시장 원리를 법 체계에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인 시민들이 서비스의 질을 평가해서, 생산자들인 법관들이 보다 나은 서비스를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시장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의뢰인들의 이익을 잘 대변한 변호사들은 명성과 부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변호사들은 밀려난다. 그러나 법관들은 그런 원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사법 독립'을 위해서 법관들이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도록 제도를 마련한 덕분이다. 그래서 재판을 주재하는 판사는 절대적 권력을 누린다.
불행하게도, 액튼 경의 지적대로,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개인에게 주어진 권력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좋은 설계가 아니다. 그런 설계는 으레 도덕적 해이를 품는다. 따라서 시장 원리를 도입해서 법관들의 절대적 권력에 대해 사후적 제약을 두는 것은 온당하다. 이런 제도는 이미 여러 나라들에서 시행해 왔고 성과도 좋다.
우리 사회에선 효과가 특히 클 것이다. '유전무죄'라는 냉소적 속언이 가리키듯, 우리 시민들의 사법적 정의에 대한 회의는 크다. 특히, '전관예우'라는 부패가 널리 퍼져서, 사법적 정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법관 평가제'는 이런 사법적 부패를 어느 정도 걷어낼 것이다.
사법부는 이런 움직임에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런 반성이 없으면, 너무 낮아진 법관의 권위를 높일 길이 없다.
재판의 핵심적 기능은 '분쟁 해결'(dispute settling)이다.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재판을 주재하는 법관이 권위를 지녀야 한다. 당사자들이 모두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판결에 승복해야, 분쟁이 해결된다. 그래서 19세기 영국 법률가 윌리엄 마크비(William Markby)는 법관의 권위가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법이 없는 법정은 모순이 아니다"(A tribunal without law is not a contradiction)고 말했다.
판사들이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자신들과 사법부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사법적 정의를 해치는 일이다. '법관 평가제'의 도입을 계기로 법관들이 스스로 권위를 세우려는 노력이 나와야 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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