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 東洛(동락) 소견/리강룡

가을 속을 가는 강은 차갑게 깨어 있다

이 하오를 유유히 흐르지 못하는 우리

旅軒(여헌)의 황죽을 빌어 슬기의 눈을 떠 볼거나

또 한 세상을 예언하는 쾌청의 갈숲 속 바람

저어갈 목선도 없는 구름 내린 빈 나루에

때묻은 時局(시국)의 소리들을 희게 헹궈 널거나.

들쇠와 들어열개. 갈숲을 건너오는 바람소리가 한지창에 어립니다. 그런 하오, 승평을 꿈꾸며 학문에 필생을 건 한 선비의 여훈을 좇고 있군요. '가을 속의 찬 강'과 '쾌청의 바람'이 개결한 정신의 표상이라면, '구름 내린 나루'나 '때묻은 시국'은 퇴락한 현실을 나타냅니다.

가을 강은 차갑게 깨어 있건만 이미 텅 빈 나루를 어쩝니까. 나루만 빈 게 아니라 저어갈 목선 한 척 없는 걸요. 비록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진 못해도, 세속의 번다함을 그쯤에서 한번 헹궈나 볼 일입니다.

여헌 장현광(1554~1637). 조선 중기의 홍유. 애당초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으되 학문의 권위를 인정받아 山林(산림)에 꼽혔지요. 그를 배향한 동락서원이 작품의 배경입니다. 동락은 '동방의 伊洛(이락)'을 뜻하며, 이락은 황하강의 지류죠. 아마 서원을 에도는 낙동강의 풍광에서 이락을 떠올렸나 봅니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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