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름다운 바보

홍콩 배우 청룽(成龍)이 평생 모은 4천300억 원 전 재산을 죽기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지구촌을 감동으로 물들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미 10여년 전에도 당시 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 자선단체에 기부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절반도 아니라 아예 전부를 내놓겠다니…. "세상에!"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며칠전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부의 이유를 간명하게 밝혔다.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외아들에 대해서도 재산을 물려줄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아들에게 능력이 있으면 아버지의 돈이 필요없을 것이고, 능력이 없다면 아버지가 모은 재산을 헛되이 탕진할 수 있다"는 말은 명쾌하다 못해 놀라울 정도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54세의 남자, 그것도 한평생 바람 잘 날 없는 연예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이리도 웅숭깊은 지혜를 쌓아왔을까.

우리나라의 큰 부자들과 비교하니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진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온갖 잔꾀를 쓰고, 변칙적 방법까지 동원하는 일부의 소인배적 행위가 더욱 옹졸하고 초라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유산 분배'가 가족 해체의 원흉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좀 산다는 집 치고 유산 문제로 인한 분란이 없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부모가 한평생 뼈빠지게 모은 돈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줬더니 오히려 형제자매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그예 원수처럼 돼버리는 예가 허다하다.

마치 나무 위에서 노래 부르는 매미의 뒤에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고 있고, 사마귀 뒤에는 꾀꼬리란 놈이 노리고 있는데 나무 아래서는 사람이 꾀꼬리를 겨냥하는 형국이다. 당장 눈 앞의 이익만 정신없이 바라보느라 정작 뒤에 숨어 있는 재앙은 못보기 쉬운게 우리네 인생사다.

청룽의 이같은 결단에 대해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왠 바보같은 짓이냐"고. 하지만 '나만 잘 살면 그만인'그런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깨닫지 못하는게 있다.'大愚(대우)는 大智(대지)에 통한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지난 10월에 타계한 대만 최대기업 포모사 그룹 창업자 왕융칭은 유언장을 통해 9조원을 사회에 기부한 것이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돈은 하늘로부터 잠시 빌린 것일 뿐"이라는 그의 유언은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행동하는 아름다운 지혜자들로 인해 이 겨울이 그래도 훈훈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