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신천둔치 계단, 노인들은 '苦단'

"노인들은 한번 헛디디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8일 오전 대구 남구 대봉교 아래. 신천둔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너비 30cm가량의 좁은 철판이 계단 한가운데 설치돼 있었다. 게이트볼을 치기 위해 온 노인들은 철판을 밟고 난간을 잡으면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백노흠(82)씨는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디거나 구르는 사고가 끊이지 않아 대구시에 경사로를 설치해 달라고 계속 요청했는데 난데없이 철판을 깔아 더 위험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화를 냈다.

대구 도심의 대표적인 친환경 휴식 공간인 신천둔치가 계단 위주로 돼 있어 노인이나 자전거 이용자, 유모차 등 교통약자의 접근이 어려워 원성을 사고 있다.

도심의 육교없애기와 횡단보도 부활 등과는 달리 교통약자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는 없는 것.

대구시가 둔치 인근 계단에 설치하고 있는 경사용 철판은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시 건설관리본부는 지난 11일부터 690만원을 들여 신천에 있는 17개의 계단에 철판을 설치하고 있다.

노인들은 계단을 없애고 걷기 편한 비스듬한 경사로를 설치해 달라고 여러차례 요구했지만 임시방편으로 철판을 깔았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크고 작은 골절을 당한 노인들이 부지기수인데도 개선책 마련은커녕 대구시 행정이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고 했다. 게이트볼 회원들은 지난 9월에는 대봉교 신천둔치 계단에서 넘어진 80대 할머니가 고관절 골절로 한 달 만에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봉교 지점 게이트볼 경기장에는 하루 300여명의 노인들이 찾는다.

노인들이 주 이용객인 게이트볼 경기장은 현재 도청교~경대교, 대봉교, 중동교 등 신천둔치를 따라 3군데 설치돼 있다. 도청교~경대교에는 경사로 2곳, 대봉교 인근에도 경사로 2곳, 계단 1곳이 있으며 중동교 인근에는 경사로와 계단이 각각 2개씩 있다. 하지만 대봉교 지점 경사로는 게이트볼 경기장과 떨어진 곳에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계단을 이용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다친 사람들의 치료비만 해도 계단을 경사로로 바꿀 비용과 맞먹을 정도"라며 "지난해 대백프라자 앞에는 경사로를 만들었는데 다른 곳도 만들어야 노인들의 안전이 확보된다"고 했다.

유모차를 끄는 주부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경우에도 철판 경사로로 오르내리기가 불가능했다. 특히 칠성교~수성교(2.1km)까지는 차량 진입용 경사로만 5곳이 있어 신천둔치로 내려가려면 차량과 함께 뒤섞여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구간은 계단만 7곳이 설치돼 있을 뿐이어서 신천동과 동인동에서 신천둔치로 내려가는 교통약자들은 수성교까지 가야 그나마 지하도를 이용할 수 있다.

건설관리본부 관계자는 "경사로 하나를 만드는 데 1천400만원의 예산이 들어 우선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해 철판을 깔게 됐고 앞으로 신천종합개발계획이 나오는 대로 경사로를 설치하겠다"고 해명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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