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이 며칠 유난히 매서웠습니다. 지난 14일에는 눈도 내렸고요. '어쩐지' 싶더니 올 1월이 6년새 가장 추웠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추워야 제맛'이라지만 서민들에겐 '아무 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죠. 살림살이가 쪼그라드는 마당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냉기에 들게 하는게 추위니까요. 올 겨울 추위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찬바람 쌩쌩 부는 도로 위에서 물건을 내놓고 파는 판매상들입니다. 여름 더위야 어떻게든 넘겨 본다지만 조금 서 있으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는 여간 만만한 것이 아니니까요. 급작스레 기온이 뚝 떨어진 지난 9일 도로 위에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팍팍한 살림살이라도 삶은 계속되고 있더군요.
◆쇠꼬챙이 하나로 "쫙 펴 드립니다"
도로가 넓고 정차 시간이 긴 신천대로상에는 이런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기억을 되살려 수성교로 일단 달렸습니다. 조금 이른 시각이었을까요, 아니면 추운 날씨 탓이었을까요? 평소에 뻥튀기며 모자, 등받이 등을 팔던 분들은 한 분도 안 보이더군요. 차를 신천대로 위로 몰아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북대구IC 진출입로에 보이던 인형 판매상을 찾았습니다. 이 분도 안 계시더군요.
동서변동 사이 호국로를 달리다 보니 도롯가에 낡은 승합차가 한 대 보였습니다. 왼편에 '자동차 찌그러진 곳 펴드립니다 부분도색'이라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더군요. '찾았다' 하는 생각에 차를 세웠습니다. 차 안에는 손모(47)씨가 타고 있었습니다. 친구 한 분이 말벗을 하고 있더군요. '취재를 왔다'고 하니 "자기도 매일신문 독자"라며 신문을 펼쳐보입니다. 처음 만난 취재원치고는 쉬운 분을 만난 셈이었습니다. 손씨는 "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다"고 했습니다. 노역일을 하다가 업종을 변경했더군요. 군 복무 시절 정비일을 했던 것을 밑천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느라 중고 승합차 구입에 50만원이 들었다네요. 압축기랑 철근도 구입을 했죠.
예상대로 벌이는 얼마 안 되는 모양입니다. 손씨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차량 철판이 눈에 띄게 들어간 차를 몰고 옵니다. 손씨는 "슬쩍 들어간 차는 그대로 타고다니거나 정비공장에 맡긴다"고 설명했습니다. 간단한 작업은 3천원을 받는데 비싸봐야 1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요즘 경기도 안 좋고 명절을 앞둔 상태라 장사는 더 안 된다는군요. 하루 수입은 보통 3만~4만원, 최대 6만~7만원 정도입니다. 이 날은 1만8천원을 벌었다더군요. 그런데 "1만원도 비싸다며 그냥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손씨의 말입니다. 허름한 작업 환경에 '못 믿겠다'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손님들도 있고요.
손씨는 도로에서 상행위를 하다 보니 "단속이 가장 무섭다"고 했습니다. 구청 직원이나 경찰 단속을 당한 것도 여러 차례입니다. "'집 근처에 산다'고 '봐달라' 해도 안 통하더라"네요. 손씨는 부인이 아프고 중2 아들 밑으로 돈이 드는 것이 걱정입니다. "이번 설엔 고향인 영천도 못 찾을 것 같다"며 아쉬워하네요. 새해 희망을 물었습니다. 손씨는 "단속 없이, 단돈 얼마라도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건강할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국우터널을 넘어 칠곡3지구로 들어서니 '딸기 트럭'이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가보니 60대 김모 할머니가 조수석에 앉아 있더군요. 할머니는 같은 자리에서 8년 정도 물건을 팔았습니다. 여름에는 굴도 판다더군요. 혼자 그렇게 물건을 판다기에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힘들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물건을 팔아. 새벽에는 물건도 떼와야 하지." 할머니는 사흘에 한 번꼴로 진주까지 가서 딸기를 사 옵니다. 겨울 추위를 막자고 투명한 플라스틱 천막을 쳤지만 매서운 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겨울 난로를 하나 장만한 것이 도움이 되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8년간 같은 자리에서 장사하니 단골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못 팔아도 사온 물건의 반 이상은 처리를 한다네요. 3분의 1도 못 파는 판매상도 많다고 하니 일종의 판매 노하우인 셈이죠. 이전에는 주물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 때문에 아파서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트럭에서 장사하는 법은 어떤 아저씨한테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운전면허증도 땄고요. 젊었을 때 장사를 해봤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다 컸고요. 다 출가했다기에 나이를 물었습니다. 그냥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며 비밀이라고 하네요. 몇 번을 물으니 그저 60대라고만 답했습니다. 적게 보면 40대 후반까지 볼 수 있는 얼굴이었기에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건강한 생활과 욕심 없이 사는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디 이만한 비법이 있을까?' 싶더군요.
할머니에게도 '새해 희망'을 물었습니다. "건강할 때까지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30여년전 "우연한 기회에 살러 오게 됐다"는 대구. 작지만 소중한 꿈은 '실현하기가 어렵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MF로 '폭삭' 가게 차리는게 꿈
다음에 만난 분은 칠곡2지구 도로변에서 자동차 용품을 팔고 있는 50대 신모씨였습니다. 차 밖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쓴 것이 추위에 단단히 무장을 했더군요. 그래도 스며드는 냉기는 어떡하지 못했는데 이따금 콧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로 조금 드러나 가무잡잡한 얼굴빛에서 한여름 고생을 엿보았습니다.
동구 신천동에 사는 신씨는 트럭은 놔둔 채 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IMF 이전에도 자동차 용품 납품일을 했다는군요. 그런데 6천여만원 어치의 물건값을 떼이면서 인생이 변해 버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은 거죠. 신씨는 "이전에는 은행에서도 우수 고객이라 600만~1천만 원 당기기는 우스웠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별 수 없이 트럭에서 자동차 용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IMF 직후에는 그래도 좀 팔렸는데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신씨도 단속의 손길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단속 나온 구청 직원들과 안면을 트게 되면서 조금은 수월해 졌다네요.
그 사이 자식들은 다 장성했습니다. 아들은 얼마 전에 대기업에 입사를 했답니다. 딸애는 현재 서울에서 간호학과 4년에 재학 중이고요. 학자금 대출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잘 커 준 게 기쁜 눈치였습니다. 새해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씨는 "다시 가게를 열어보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내 삶도 뻥튀기 안 되려나"
한 분을 더 만났습니다. 구암공원 삼거리에서 뻥튀기를 파는 강모(48)씨였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보이더군요. 걸을 때마다 오른쪽 다리를 절었습니다. 강씨는 3년 전부터 뻥튀기 기계를 마련해 여기저기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숙녀복 회사에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다친 다리가 불편하니 다른 부분까지 아파져서 그만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사업(?)에 뛰어들었죠. 1t 트럭 외에 뻥튀기 기계 2대를 구입하는데 200만원이 들었습니다. 투자비가 남들보다는 많이 든 셈이죠. 장사하는 데도 기본 비용이 있습니다. 모터를 돌리고 기계를 돌리는데 연료비가 들어가기 때문이죠. 물건값에 뻥튀기 재료비도 들어갑니다. 강씨는 "하루 20만원 어치는 팔아야 5만원 정도 챙긴다"고 했습니다. 과자 1봉지는 2천원, 3봉지에 5천원이었습니다. 쌀 튀밥을 해 주면 3천500원을 받는다네요. 박리다매가 분명합니다.
손님들이야 '장사 되겠다'고 한 마디씩 던지지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강씨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갈했습니다. "하루 5만~6만원 벌 때도 있다. 혼자 사니까 그렇지 은행 들어갈 돈은 하나도 못 번다"는 한탄 아닌 한탄을 했습니다. 겨울 추위에 떠는 것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명절을 앞두고는 돈을 더 안 쓰니 상황은 더 안 좋습니다. 쌀이나 콩을 튀기러 오는 손님이 조금 있을 뿐 대부분 나이 많은 손님이 찾으니 돈 벌기가 쉽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새해 소망, 그런 것 안 바란지 오래됐다. 먹고 살기도 바쁘다"며 강씨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는 "몸 안 아프고 밥이라도 먹고 사는게 최고지. 욕심부릴 것 아무것도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씨에게는 오히려 행인들과 나누는 살아가는 얘기가 더 큰 힘이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인을 통해 들으니 IMF 이후 길거리에서 성인비디오를 팔고 있다는 한 40대 가장은 가족들 몰래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인터넷에 '야동'(야한 동영상)이 판치는 세상에 벌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취재 도중에 만난 다른 성인비디오 판매상은 "취재 나왔다"는 말에 인상부터 찡그리더군요. "할 말이 없다. 그냥 가라"면서요. 다 사연 있는 직업이겠지만 '자신에게만은 떳떳한 직업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망만 있으면 행복의 싹은 그곳에서 움튼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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