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마감 후'를 마감하며

IMF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10여년 전 일입니다. 대구의 한 전자제품 회사가 도산했는데, 채권자 수십명이 합심해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는 내용의 제보전화를 받았습니다. 미담 기사거리인 셈이었지요. 취재해 기사를 썼는데 기사가 나간 뒤 기자는 뜻밖의 항의전화를 받았습니다. 다짜고짜 "당신 돈 먹었지?"라며 욕부터 퍼붓는데 황당하더군요. 사연을 듣고 보니 전화한 사람도 채권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회사 살리기 채권자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 기업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를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기사를 쓰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지요. 기자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옳지 않거나 진실이 오히려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뉴스에서의 객관은 말장난일 수 있습니다. 많고 많은 일 중에 특정한 사실을 선택해 기사화하는 것에서부터 제목 다는 것, 기사 크기를 정하는 것 등 모든 편집 과정에 주관이 개입됩니다. 말하자면 객관으로 위장한 주관인 겁니다.

보도사진만 해도 앵글의 각도와 자르기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를 전해줍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보도사진이 생각납니다. 미군 병사가 중동인 포로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전장에서 피어난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왼쪽 부분이 잘려진 사진이었습니다. 원본 사진에는 또 한명의 미군 병사가 겨눈 총구가 포로의 머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두 사진이 전하는 느낌은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그것이 바로 편집의 마술인 것입니다.

뉴스에서 '○○할 것으로 보인다' '알려졌다' '○○되다' 같은 수동태 문장이 유독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보이는' 것이어야 객관적 사실(fact)이 된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적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요.

또한 기사를 쓰다 보면 '후까시'(기사에 윤색을 하고 사실을 과장한다는 뜻의 언론사 은어) 욕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한쪽으로 몰아가고 선정적으로 표현해야 지면에 크게 배정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로는 경쟁 언론사의 '후까시'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질 때도 있지요.

사실 기사를 쓰는 데 정답은 없습니다. 인간인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 겁니다. 썩은 사과라도 반대쪽만 보면 참 먹음직한 사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기사를 작성할 당시에 기자가 얼마만큼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양심에 따라 기사를 썼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신문과 방송사 간에 전쟁에 가까운 공방이 다반사로 빚어지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같은 사안을 두고 너무나 다른 접근 태도를 보여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자신은 공정보도를 하는데 남은 편파보도를 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격입니다.

여기 고대 하와이 사람들로부터 전해내려온 신비한 주문이 있습니다. 외우면 행복해지는 주문이라고 하는군요. 대신 이 주문은 다음의 4문장과 함께 외워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주문에는 어떤 문제나 상황 앞에서든 온전한 책임을 지고 치유를 선택할 힘이 나에게 있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독자 제위들에게 그 주문을 소개합니다. '호오포노포노.'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김해용 비서실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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