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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상주기자 전충진의 '독도 6개월'

▲ 동도 정상에서 서도를 배경으로 선 전충진 기자.
▲ 동도 정상에서 서도를 배경으로 선 전충진 기자.

"어이 전군! 뭐 하나 좀 물어보자. 거기 독도에 밭농사는 좀 하나 어떻노?"

10여년 전 정년퇴임하고 낙향해서 생활하는 동문 선배가 전화를 걸어와 대뜸 묻는다. 시골 경로당 어른들 간에 독도에 농사를 '짓는다' '안 짓는다'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형부! 그래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거기 슈퍼 같은 건 없죠?" 십수년 넘게 외국을 떠돌다 지난주 서울로 돌아와 정착한 처제가 독도에 있는 형부한테 안부를 물어왔다.

막막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지금 망망대해 섬 위에 앉았고 바다에는 비가 온다. 괭이갈매기는 무리 지어 비명을 질러대고, 물결은 허옇게 뒤집어져 온몸이 부서진다.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이제 독도의 겨울도 끝이 나려나보다.

호박 하나, 양파 두 뿌리, 양배추 4분의 1 쪽, 반쯤 썩은 감자 한 알, 무 반 개, 돼지고기 한 팩. 일주일 전 독도 등대 냉장고에 남았던 세 사람 분 부식이었는데, 한 주일 용케 잘도 버텼다. 계란 프라이도 못하는 요리 솜씨에 3교대로 닥치는 밥 당번은 엄청 스트레스다. 그 솜씨에, 그 부식으로 밥을 해내니 같이 생활하는 등대 요원은 입맛이 없다며 늘 밥 반 그릇을 못 비운다. 이 무슨 송구함인가?

지난주 내내 물결은 사납고 바람은 거칠어 꼼짝 못하고 틀어박혀 있었다. 뭍으로부터 들리는 소식도 우울한 것들 뿐. 한 잔 술이 간절했다. 독도 안에 술은 이미 1월 말 완전히 바닥났다. 다행히 마시고 버리지 않은 중국술 사기병이 부엌 구석에 있어 뚜껑을 열어보니 제법 술 냄새가 났다. 물 한 컵을 부어서 한참 흔들어 헹궈내 마셨다. 이 무슨 청승인가?

지난 설날, 독도는 참 슬펐다. 이상기 경사가 주검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경비대에서 설날 합동차례를 모시며 내가 헌작(獻爵)할 때 그는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독도 사람들의 당혹과 비통도 잠시, 종내는 사건의 잠재적 피의자가 되어 이틀간 조사를 받고 그날의 현장상황을 재연해 보여야했다. 이 무슨 참담함인가?

하지만 독도에 있었기에 가슴 뿌듯한 일들도 많았다.

해경경비함 취재를 요청했을 때 평상시 눈에 잘 띄지도 않던 그 거대한 함선이 독도 앞바다에 다가와 멈춰 선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함장이 직접 작전보트를 타고 접안장까지 나와 안내를 했다. 경비함 갑판에는 모든 대원이 나와 반겨주었고, 실전을 방불케하는 방어훈련을 두 시간여에 걸쳐 실연해 주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과 장비가 동원된 것은 처음일 것이다.

내가 입사할 당시 문화부장을 지낸 대선배가 불쑥 독도를 찾아와 진심어린 격려를 해줬고, 개천절 대구시 행사단이 왔을 때 김범일 대구시장이 그랬고, 국회 국정감사단과 함께 온 당시 강희락 해양경찰청장이 '고향 까마귀'라며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었던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보내주신 격려들이었습니다. 동료와 친구는 물론 미국에 사는 교포, 전직 독도수비대원, 동화작가가 메일을 보내왔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2월 김성도 이장의 입원으로 잠시 뭍으로 나갔을 때는 딸이 다니는 수학학원 원장이 일부러 안부를 물어주었고, 돼지국밥집에서 만난 옆자리 손님은 소주까지 한 병 보내주었다. 모두 독도에 있었기 때문에 얻은 수확들이다. 그렇게 오늘로 6개월이 지났다.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보다 아득한 마음에 오금이 저려온다.

한 대학원생이 일러줬다. 미국 대학에 석사과정 유학을 갔는데 동양학 전공수업에서 교수가 "독도가 한국 땅인지 일본 땅인지"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10여명 학생 모두 '일본'이라고 답했고, 자기 혼자만 '한국'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교수가 "왜 혼자만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는지" 설명해보라고 했을 때, "한국인이 점유를 하고 있으니 한국 땅"이란 말밖에 못하고 진땀만 뻘뻘 흘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 그는 한국에 돌어와 본격적으로 독도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일본이 저리 앙탈을 부리는 것도 외국사람들 70%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니 그러는 것은 아닐는지….

"선배님! 여기는 파 한 뿌리 묻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처제! 슈퍼는 울릉도까지 2시간 40분 배 타고 나가야 있어요…."

독도는 '만세'소리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독도에 대해 많이 알고 세계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만이 진정 독도를 지키는 길이다. 내일은 90주년을 맞는 3·1절. 태극기 달고 독도 공부 좀 하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독도에서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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