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월드컵이 있기 1년 전 프레월드컵으로 열리는 컨페더레이션스컵도 한창. 축구팬들의 촉각을 자극한다. 남아공 월드컵은 내년 6월 12일 개막, 7월 11일 폐막한다.
아직까지 남아공 월드컵으로 가는 길에 확실히 도태된 국가는 드러났지만 완전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국가는 개최국인 남아공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네덜란드에 불과하다. 여전히 안개 속.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가 연출될 때마다 전 세계 축구 마니아들의 손에는 땀이 마를 시간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본선행을 확정지은 한국은 오는 12월 있게 될 조편성 추첨에 외려 신경이 더 간다. 원정 월드컵에서의 첫 16강 여부도 타진되겠지만 객관적 자료와 징크스가 꼭 따라다니는 게 스포츠이기 때문. 객관성과 징크스. 서로 안 맞는 것 같지만 둘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더 흥분된다. 어떤 징크스가 맞아떨어질까. 관중의 입장에서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지역예선 성적이 좋으면 본선에서 죽 쑤는 한국 축구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개최국 자동출전으로 진출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지역 예선 리그가 없었기에 논외로 하고, 지역 예선 리그가 아시아지역에도 도입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한국은 지역예선 성적과 본선 성적이 정확히 반비례했다. 6개 팀이 리그전을 벌여 2개 팀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되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무패를 기록, 월드컵 무대를 또 밟게 된다. '거칠 것 없다'는 식의 언론보도가 끊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개막전에서 카메룬이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1대 0으로 누르자, 덩달아 우리도 '이번엔 황색돌풍'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시아 최고였으니 아프리카랑 동급으로 봤던 것. 자만심 팽배는 결과적으로 3전 전패(대벨기에 0:2, 대스페인 1:3, 대우루과이 0:1)라는 최악의 성적을 낳았다. 반면 카메룬은 8강에 진출, 선전함으로써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아프리카는 1장이 더 늘어난 3장의 본선행 티켓을 확보하게 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도 마찬가지.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전체 8번의 게임 중 6게임 만에 5승1무의 성적을 거둬 일찌감치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입으로 축구하는 이'들 사이에선 이때부터 한국은 막강 화력을 앞세워 본선 16강으로 가는 분위기였다. 네덜란드한테만 비기고 벨기에, 멕시코는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었지만 결과는 1무2패(대멕시코 1:3, 대네덜란드 0:5, 대벨기에 1:1). 차범근 감독이 중도하차하는 비애를 맛봐야했다.
반면 카타르 도하의 기적(이라크가 일본과 비김으로써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 사건)으로 또 한번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가까스로 올라간 대회여서인지 누구도 자만하지 않았다. 실제 쉽게 잡는다던 볼리비아와 비기고, 어렵다고 본 나머지 두 경기에서 선전했다. 결과적으로 2무1패(대스페인 2:2, 대볼리비아 0:0, 대독일 2:3)의 성적을 거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 지역예선 2위로 턱걸이, 본선행에 올랐다. 심지어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됐으니 어느 정도로 풍파가 심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풍전등화같았던 한국도 결국 '내가 낸데'라는 생각을 버리고, 빈틈을 찾고 보완하면서 그나마 괜찮은 성적을 냈다. 결과는 1승1무1패(대토고 2:1, 대프랑스 1:1, 대스위스 0:2)였지만 다른 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첫 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조금씩 드러나는 우려와 기대
직전 대회 우승팀의 굴욕과 직전 대회 4강(3위, 4위) 팀의 지역 예선 탈락은 희한하리 만치 잘 들어맞는 징크스 중 하나. 1986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직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는 불가리아와 비겼고, 아르헨티나에 패한 뒤 한국을 겨우 이겨 16강에 올랐으나 더 이상 전진은 없었다. 16강에서 떨어진 이탈리아 선수들은 자국민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아야했다. 이후에도 이 같은 굴욕은 지속됐다. 1990년 아르헨티나는 카메룬에 0대 1로 졌고, 1994년 독일은 8강에서 불가리아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1998년 브라질은 준우승까지 하긴 했지만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를 2대 1로 겨우 이겼다. 2002년에도 프랑스는 본선에서 한 골도 못 뽑고 예선탈락했으며 지난 대회에서 브라질은 8강에서 프랑스에게 덜미를 잡혀 보따리를 싸야했다.
직전 월드컵에서 4강에 든 팀 중 한 팀은 반드시 다음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한다는 '4강 징크스'는 더하다. 이 징크스는 월드컵 시작과 더불어 있었던 것으로 3개 대회를 제외하고 모두 적용됐다. 최신 시리즈는 1986년 월드컵 3위였던 프랑스의 1990년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에서부터. 이후 잉글랜드, 스웨덴, 네덜란드, 터키가 희생양이 됐다. 모두 유럽지역 팀인 게 눈여겨볼 일(표 참조).
지난 대회 4강에 들었던 포르투갈, 독일 중 한 팀을 2010년에는 못보겠다는 얘기가 이미 2006년부터 돌았지만 점점 현실화돼가고 있다는 게 더 징크스를 믿게 한다. 실제 포르투갈은 유럽예선 1조에서 3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 현재 1조 1위인 덴마크는 바이킹 친척인 스웨덴의 생사여탈권도 쥐고 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냐. 결정권은 덴마크 대표팀이 갖고 있다. 반면 독일은 5승1무의 성적으로 조 1위를 달리고 있으며, 남은 경기도 아제르바이잔과 2경기, 러시아와 1경기, 핀란드와 1경기를 남겨두고 있어 본선 직행이 유력하다.
1962년 월드컵 우승국인 브라질부터 월드컵 우승국가가 남미와 유럽에서 번갈아가며 나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브라질 이후 잉글랜드, 브라질, 서독,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서독, 브라질,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까지. 이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두 곳 중 하나가 우승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유럽 국가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는 것도 큰 이유.
◆"그 어렵다는 예비고사를 통과했는데" 유럽지역예선과 월드컵 본선의 상관관계
유럽지역예선을 통과, 본선에 진출한 국가 중 16강에 오르지 못하는 팀은 잘 없다. 그만큼 유럽지역예선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참가국이 24개 국가로 확대된 첫 대회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하지만 1982년 월드컵은 6개 조, 4팀이 예선을 치러 각조 1, 2위 12개팀이 다시 4개 조로 나뉘어 2차 리그를 치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16강 토너먼트가 도입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살펴보면 유럽의 14개 국가(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 포함)가 참가한 그해에는 헝가리,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포르투갈이 희생양이 됐다. 1990년 대회(주최국 이탈리아 포함 14개국)에서는 오스트리아, 소련, 스코틀랜드, 스웨덴이 짐을 쌌다. 13개 국가가 참가한 1994년 대회에서는 러시아, 그리스, 노르웨이가 자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는 본선 진출 국가가 32개국으로 늘어났지만 유럽국가의 참가국 수는 14개국으로 고작 1개 늘어난 것에 불과, 여전히 힘겨운 예비고사를 통과해야 했다. 다만 32개국 8개 조로 나뉘면서 유럽국가가 1개 조에 3팀씩 배정되는 경우는 사라졌다. 그래도 본선 첫 풀리그 예선은 순탄치 않았다.
1998년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프랑스와 지척에 있는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스페인, 불가리아, 벨기에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오히려 앞선 대회 때보다 탈락 국가가 훨씬 늘어났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월드컵 본선에 오른 전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는 징크스를 갖게 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사정이 좀 덜했다. 독일을 포함해 14개국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폴란드,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체코, 크로아티아 등 단 4개국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월드컵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유럽국가가 대거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전 대회 우승국이었던 프랑스가 단 1승도 못 챙기고 짐을 챙겼다. 전 대회 3위였던 크로아티아도 프랑스의 전철을 밟았다. 처녀 출전한 슬로베니아 역시 귀국행을 일찌감치 예약했고, 포르투갈과 폴란드도 한국과 미국에 밀려 나갔다. 러시아도 일본에 덜미를 잡혀 자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
◆되는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골든제너레이션, 부흥하나.
1989년과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연거푸 정상에 오른 포르투갈은 당시 세대를 '황금세대'(골든 제너레이션)라 불렀다. 하지만 이들이 빛을 발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당시 멤버였던 주앙 핀투,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등은 10년 뒤인 2000년 '유로 2000'에서 조국 포르투갈을 준우승에 올려놓았다.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를 흔히들 '미리 보는 월드컵'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진가를 발휘하면 더 큰 무대에서 빛을 낸다는 뜻이다. 대개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정도면 이들의 빛을 느낄 수 있다. 1979년 아르헨티나의 우승 주역은 단연 디에고 마라도나. 마라도나는 1986년과 199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무소불위의 팀으로 만든다.
1987년 유고슬라비아 우승을 이끈 보반, 야르니, 수케르 등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 후 처음으로 출전한 조국 크로아티아를 3위에 올려놓았다.
이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는 1995년부터 2007년 대회까지 7번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중 5번의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를 눈여겨볼 만하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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