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상주의 그림 속에는 음악을 소재로 한 장면이 꽤 많이 보인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의 '음악 교습'이나 '피아노 교습' 그리고 세잔(Paul Cezanne:1839~1906)의 '피아노 치는 소녀' 그리고 인상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고흐에게도 '피아노 앞에 앉은 가셰의 딸'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마티스나 세잔, 고흐가 특별히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고 음악을 사랑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19세기 후반 프랑스 문화 속에 음악과 미술이 생활화되어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당시의 이런 프랑스적인 예술·문화 애호 정신은 더 나아가 유럽 전역에 문화생활의 척도로 번져나가게 되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행복을 그린 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과의 만남'이라고 타이틀을 붙인 '르누아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인상주의 화가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1841~1919)는 본래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음악가들과의 친분이 매우 두터웠던 걸로 알려져 있다.
낭만주의 독일 오페라를 최고의 걸작 '악극'(musik-drama)으로 완성한 바그너가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오페라 '파르지팔' 작곡을 완성하던 1882년까지 약 10여년간 그를 따라다녔다고 알려졌을 만큼 음악가들을 숭배했다고 한다.
이번 서울 전시회에서는 르누아르의 명화들 중에서 6개의 피아노 치는 여인들 중에서 2개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는 5개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소녀들'(서 있는 갈색머리 소녀와 의자에 앉은 금발머리 소녀) 중의 한 작품이고, 또 한 폭의 그림은 '피아노 앞에 있는 이본느와 크리스틴 르롤'이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여인들 중에서 가장 걸작은 두 번째 그림 '이본느와 크리스틴 르롤 자매'일 것이다. 이 그림 속의 등장인물 이본느와 크리스틴은 실제 인물이며 이본느 르롤은 프랑스 낭만주의 예술가곡 '멜로디'의 대가 쇼송(Ernest Chausson:1855~1899)의 누이로서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드뷔시가 자신의 피아노 모음곡 '영상'(Image,1894) 1권을 헌정했고 초연했던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으니 이본느 르롤의 실력은 우리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 르롤 역시 화가였는데, 당시 르누아르가 포함된 드뷔시, 드가 등이 함께하는 예술가 그룹의 주동자라고 할 수 있었다.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색채와 터치로 표현된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녀들이 피아노 앞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악보를 읽고 있는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더욱 재밌는 사실은 그림 속의 피아노 모양도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소녀들의 피아노는 업라이트라면 이본느와 크리스틴의 피아노는 그랜드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르누아르의 그림 앞에 서서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이, 쇼송의 프랑스 가곡 '라일락의 계절'(Le temps des lilas)의 반주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낀다면 내가 르누아르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는,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말일까. 그림을 통해 듣고 음악을 통해 볼 수 있는 예술감상의 경지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최영애 음악칼럼니스트 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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