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키보드 앞에서 움직이는 손놀림이 여느 사람의 속도와 다르다. 영타는 물론 마우스 조절까지 예사롭지 않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8일까지 보름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40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웹디자인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이동규(20)씨는 한 분야를 파고든 전형적인 '꾼'이다.
이번 대회에서 대구 출신의 메달 입상자는 모두 3명. 경북기계공고 출신 이준하 선수(CNC/밀링)와 경상공고 출신 공금석 선수(실내장식)가 금메달을 따냈다. 이들의 성적도 대단하지만 단연 눈에 띄는 선수는 동메달을 따낸 이씨였다. 이씨의 메달이 무엇보다 값진 것은 대구에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진학한다는 조일공고에서 입상했다는 것 때문이다. 모교인 조일공고에서 국제대회 입상자가 나온 것은 개교 이래 처음. 학교에서도 카퍼레이드 수준의 환영식을 준비해놓고 있다지만 정작 이씨는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신종플루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해 2월 조일공고를 졸업한 이씨의 메달이 뜻깊은 이유는 학교 성적이 안 좋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 이씨는 여러 가지 혜택도 따냈다. 석탑산업훈장과 1천700만원의 포상금은 물론이고, 이 분야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해 병역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됐다. 웹디자인 분야에서 1년 이상 일할 경우 기능장려금도 받는다. '움직이는 벤처기업'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인생역전'을 이룬 이씨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2004년. 이씨가 진학할 수 있는 학교는 몇 안됐다. 초라한 성적 탓이었다. 모교인 성광중에서 전교생 460여명 중에서 420등. 이씨는 "공부가 너무 안 되고 재미도 없어서 중학교 수업시간에 빠지기도 하고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했던 것. 이씨는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는데, 게임을 하다 보니 손 움직임이 남들보다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웹디자인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때마침 1998년부터 만들어진 조일공고의 '멀티미디어 컴퓨터'라는 동아리를 만난 것도 이씨에겐 행운이었다. 동아리의 활성화로 2001년 조일공고에는 멀티미디어과가 생겼을 정도.
학교에서 웹디자인에 매달리기를 3년. 고3이던 2007년 결국 이씨는 일을 냈다. 16개 시·도 48명의 선수가 참가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던 것. 그때부터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씨는 2년 뒤를 생각하고 있었다. 기업체 입사를 고사하고 모교 보조교사로 남는 길을 택했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 대비해 모교에서 훈련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한 우물을 파 세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이씨는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낮은 성적이라고 자신을 가두고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IT 분야의 경우 공부를 잘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길을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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